알라딘서재

오즈의 서재
  • 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
  • 스티븐 허드
  • 16,020원 (10%890)
  • 2021-08-23
  • : 254

   역시 대중을 상대로 한 과학도서는 재밌어야 한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으로 되돌아가보자. 나는 생물시간을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나긴(절대 외울 수 없는) 학명을 들을 때면 나는 절대 생물학자가 될 수 없다고(누가 시켜준대?) 생각했었다. 지금 보니 학명은 '분류학'에 속하지만서도. 그런데 이런 학명 이야기를 이렇게나 재미있게 풀어놓은 책이 있다. 여전히 외울 수는 없지만 그 기나긴 라틴어 학명에 들어있는 규칙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속명이나 종소명이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것도 안다.


   린네의 이명법 덕분에 각 종의 학명은 한 단어로 된 종소명과 해당 종이 속한 상위 분류군을 나타내는 속명이 짝을 이루면서 지구의 생물다양성을 쉽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린네 이전에는 그 생물의 특징을 학명에 죄다 풀어썼다고 한다. 그러니 학명이 어마어마하게 길 수 밖에. 그런데 린네의 명명법에 또 한가지 특징이 있었으니 바로 사람의 이름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신이 기리는 과학자일 수도 있고 존경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 '학명 짓기'는 과학자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을 비롯하여 생물의 종은 수천만이 될 것이며 지금도 아직 분류되지 못하고 박물관 표본실에 쳐박혀 있는 표본들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이들 중 신종으로 분류되는 무언가는 앞으로도 누군가의 이름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재미난 이야기를 품은 학명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잊혀진 누군가가 학명으로 인해 영원히 기억되기도 하고 과학자들의 애정과 존경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학명이 과학자들끼리의 디스전이 되기도 한다. 혐오스러운 특징을 지닌 생물의 종에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 공격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예전에는 과학이 백인 남성의 영역으로 제한되어 있었던지라 종들의 학명 대부분은 백인 남성들의 이름으로 지어졌다는 인종과 성차별의 역사도 학명을 통해 드러난다. 식민지 시대의 무분별한 자연훼손과 원주민 학살의 댓가로 얻게 된 생물의 표본들 중 토착민을 기리는 이름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저자는 개탄한다.


   또 한가지 재미있으면서도 안타까운 건 이러한 학명에는 선취권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선취권이란 일단 이름이 지어지면 그 이름에서 어떤 과학적 오류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예를 들어 신종인 줄 알았는데 신종이 아니었달지) 그 이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틀러의 이름을 딴 딱정벌레도 있고(히틀러를 추종하던 어떤 과학자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토착식물임에도 일본인의 이름이 붙은 학명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안이 되는 건 아직도 지구상에는 명명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동식물종들이 있다는 것. 하지만 '분류학'을 하찮은 학문으로 취급하는 탓에 분류학자가 되려는 이들도 별로 없고 예산도 배정받지 못하고 있다니 어떤 학문이든 인기없는 부문은 있나 보다. 누군가가 당신이 하는 일이 뭐냐고 물어볼 때, '아 저는 하늘의 별을 연구하고 있어요' 와 '아 저는 빈대의 형태적 특징들과 해부학적 특징들을 연구하여 신종인지를 구별하는 일을 해요'랑 온도차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좋아하고 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렇게 재미난 학명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