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니와 게이퍼드가 다시 한 번 뭉쳤다.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로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세상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호크니의 삶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동굴벽화부터 아이패드까지", 제목 그대로 그림의 역사에 대한 호크니와 게이퍼드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기존의 미술사를 다룬 책들이 주로 비평가에 의한 일방적인 시각을 담았다면 이번에는 현재 활발하게(활발하다!라는 말로는 부족하지만) 활동하고 있는 현대의 가장 잘 나가가는 예술가와 비평가가 미술에 관한 서로의 관점을 주고받으며 '그림의 역사'에 대한 형태를 그려나간다는 점에서 일반 미술서와 다르다. 일단 대담 형식이다 보니 지루하지 않고 대화로 이루어져있다보니 이해하기 힘든 현학적인 표현들이 많지 않아 미술을 애정하는 일반인들이 읽기에 부담이 없다. 거기에 우리가 익히 보아온 그림들 뿐만 아니라 호크니의 작품들이 아주 많이 실려있어 밝디 밝은 호크니 색채들로 안구정화가 절로 된다.
미술의 역사에서 항상 먼저 다루어지는 동굴벽화로 시작해서 아이패드까지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호크니는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도 잘 알려져있다. 나는 아이패드로 무언가를 그려보진 않아서 잘 몰랐는데 아이패드를 이용했다고 해서 기법이 다 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디지털 아트라고 불리는, 손으로 그렸다고 할 수 없는 그림은 호크니의 스타일이 아니다. 호크니는 아이패드를 사용하더라도 실제 손을 이용하여 드로잉을 한다고 한다. 단지 캔버스에서 터치 스크린으로 옮겨졌을 뿐이지 그림에 있어 '손의 흔적'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그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이 별걸 다 할 수 있는 시대에 당연히 그림 정도는 거뜬하게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이 등장했을 때 그림이 없어질 거라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고 영화가 연극을 밀어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리는 행위는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하는 것과 비슷하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일종의 본능이다. 그렇다면 아이패드 이후의 그림은 어떤 형태가 될까? 그게 무엇이든 그림의 역사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게 호크니와 게이퍼드의 생각이다. 하지만 미래의 그림이 어떤 형태가 되든 아마도 나는 여전히 진짜 붓을 이용해서 그린 그림들에 더 애착이 갈 것 같다(꼰대!).
* 한가지 흥미로웠던 부분 : 카라바조가 그림을 그린 방식과 인물을 배치하는 방식을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한 점이다. 각각의 배우를 따로 촬영한 다음 한 화면 안에 이미지를 끼워맞추고자 하는 감독으로 비유하면서 카라바조가 활용한 방식이 오늘날의 포토샵의 기능과 유사하다고 했다. 카라바조가 포토샵을 접했다면 어땠을까? 키아로스쿠로라고 하는 명암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입체감과 깊이를 표현한 기법은 카라바조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용어인데 게이퍼드는 그것을 '과포화 상태의 바라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화려한 조명을 받고 렌즈를 통해 표현된' 것처럼 극사실적으로 그렸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