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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서재
  • 조금 미친 사람들
  • 카렐 차페크
  • 15,300원 (10%850)
  • 2024-09-09
  • : 1,486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 출신 최고의 작가로 뽑힌다는 카렐 차페크. 그의 작품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무려 1920년에 형과 함께 쓴 <R.U.R.>이라는 희곡에서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작가라고 한다('강제노동'이라는 의미의 체코어 '로보타'에서 따온 용어란다). 소설, 에세이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던 이 분이 쓴 여행기가 이번에 처음으로 국내 초역이 되었다고 해서 읽어보았다.


   1930년에 쓰인 스페인 여행기라 지금의 스페인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생각했는데 여행기록의 초점이 문화, 예술, 자연풍광 등에 집중되어 있어 사실 지금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특히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고야를 비롯 예술가들과 작품들에 과한 글들은 스페인에서 그들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놀랄 정도로 통찰력 있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스페인의 '투우'에 관한 것이었는데, 투우 경기의 잔인함(그저 오락을 위해 수많은 황소들이 죽음을 당한다)과 스페인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전통 문화로서의 관점 사이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글에 잘 녹아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현재 관점으로서의) 여행기 형식은 아닌지라 막 와닿지 않은 부분도 있기는 했다. 특히 가보지 않은 장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작가의 흥분과 떨림, 열정 같은 것들을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작가의 묘사능력이 워낙 탁월한데다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스페인 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쓴 마지막 부분은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주었다. 아마도 작가가 광기의 나치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우리에게도 충분한 일침이지 않을까. 요약해서 인용해 보자면,


...(중략) 스페인 사람들이 정말로 스페인 사람다워서 우리는 무척 기뻤습니다..(중략)..세상에는 수천 가지 모습이 존재하고 그 모습이 다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세상을 좋아하게 되는 게 한층 더 즐겁지 않을까요?...(중략)..모든 차이점은 그 자체로 소중히 여겨질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차이가 있기에 우리 삶의 지평이 넓어집니다...(중략) - p218-219


*참고로 '조금 미친 사람들'이라는 번역 제목은 작가가 엘 그레코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나온 말이다. 원제는 그냥 <Trip to Spain>. 엘 그레코를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눈이 자신의 비전에 열정적으로 고정된 사람은 모두 조금 미친다'고 했다.

* 이 책은 체코어로 쓰여진 걸 영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번역한 것이다. 영어를 거치지 않고 직접 번역하면 어떤 글이 나올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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