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임말이나 소리나는 대로 쓰기가 온라인에서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는 것에 약간의 우려가 있는 나는 꼰대일까? 사실 그런 우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 역시 많이 사용하게 된다. 온라인 메신저의 특성 상 줄임말은 상대방의 이해를 전제조건으로 한다면 그걸 풀어서 쓰는 수고를 덜어주고 맞춤법에 맞지 않는 소리나는 대로 쓰는 방식은 구어체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딱딱함을 없애주기도 하고 뭔가 친밀감도 느껴진다. 다만 문제는 그런 어휘들의 올바른 표현을 알고 그런 표현들이 통용될만한 공간에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티비에서 연예인들의 맞춤법이 논란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연예인들의 몰상식을 비웃는 나는 얼마나 적절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을까 자문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한 끗 어휘력>은 나의 어휘 실력을 점검해 보는 적당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 책을 자주 읽는 사람이라면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는 어휘들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진짜 헷갈리는 표현들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내가 완전 잘못 알고 있는 어휘도 있었고 아..이래서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구나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안주 일절과 안주 일체라는 어휘를 살펴보자. 당연히 안주 일체가 맞다. 일절은 어떤 행위나 일을 하지 않을 때 쓰는 표현이잖은가. 그런데 왜 어떤 술집에는 안주 일절이라고 써있을까? 알고보니 '일절'과 '일체'의 한자가 같다. 둘 다 一切을 쓰는데, 切이라는 한자가 '끊을 절'과 '모두 체'라는 2가지 뜻과 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한자만 보고 어떤 곳은 일절, 어떤 곳은 일체라고 써놓았던 것이다.
내가 완전 잘못 알고 있었던 건 바로 '대'와 '데'였다. 설명을 읽은 지금도 여전히 헷갈리기는 하지만 이젠 '데'도 문장의 마지막에 사용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까지는 문장의 마지막에는 무조건 '대'만 가능한 줄 알았다. 예를 들어 '이번에 보니 걔는 옛날이랑 똑같더라'라는 말을 '옛날이랑 똑같데'라고 할 수는 있어도 '옛날이랑 똑같대'는 사용할 수 없다. '대'는 내가 어떤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듣고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 쓰는 어휘이고 (예를 들어, 일기 예보를 보니 내일은 비가 온대 - 내가 들은 일기 예보를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데'는 내가 과거에 직접 보거나 겪은 일을 상대방에게 말할 때 쓰인다. 안틀린 사람 찾기가 더 힘들다는 '대'와 '데'. 여전히 헷갈리지만 앞으로는 사용할 때 생각은 한 번 해보고 쓸 수 있을 듯 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누군가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썼는데 왜 심심하게 사과를 하냐는 답변을 받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중식 제공'이라는 표현에 왜 한식을 안주고 중국 음식을 주냐는 대답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 뭐 좋은 우리 말이 있는데 왜 한자를 써서 무식한 사람 만드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자 자체가(여기 한자 잘 모르는 일인 있습니다) 아니다. 한자이긴 하지만 여전히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 어휘라면 이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옷만 TPO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 역시 TPO가 있고 바로 그 '한 끗 어휘력'이 문해력 차이를 만든다. 대화를 하면서 단어나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거시기'를 남발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시작해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