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어렸을 때 이런 상상 안해 본 사람 있을까? 나만 아는 비밀의 공간이나 나무 위나 바다 속 혹은 하늘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그런 상상말이다. 미술 실력이 비천하다보니 그런 상상을 그림으로 그릴 생각은 못했어도 엄청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건축학 따위에 지식이 있었을리는 만무하니 그저 내 마음대로 지어진 상상 속 공간이긴 하지만 나만의 공간을 상상하는 자유를 맘껏 누렸더랬다. 그 상상도가 내 눈 앞에 펼쳐졌다. 그것도 집 한 채나 방 하나가 아니라 세상 하나가 만들어졌다. 저자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인디게임 개발자로 평소 SNS에 '멋진건축'을 주제로 멋진 상상 속 풍경들을 제작하여 올렸다고 한다.
이 멋진 환상 속 세상을 여행하는 주인공은 배달을 생업으로 하는 포터 돼지이다. 돼지가 여행하는 세상은 저자의 손끝에서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마치 '왕자의 게임'을 생각나게 하는 지명부터(거인의 손바닥, 수인의 숲, 대륙의 덮개 등등) 재미있는 건물 이름(혼돈의 집단 주택, 협곡의 피체리아, 낭떠러지 민박 등등)도 흥미롭지만 이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이런 장소들에 대한 자세한 단면도와 설명이다. 상상의 장소라고 이미 알고 있음에도 뒤따르는 설명이 너무 현실적이고 그럴싸해서 진짜 어디에 있는 공간이지 않을까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엄청 사소하고 소소한 것에까지 신경을 쓴 흔적은 어렸을 때 별거 아닌 것으로 고민하고 결정을 하지 못했던 내 상상 속 공간을 생각나게 한다.
책에 등장하는 장소나 건물들의 구조는 대체적으로 미로처럼 복잡하다. 그래서 그림 세부도 역시 엄청난 복잡함을 자랑하는데 완전 내 취향이다. 컬러링도 복잡하고 섬세한 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절대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한 듯) 이런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도 어렵고 그걸 일러스트로 하나하나 표현해 내는 건 더 어렵겠지만 사랑스러운 포터 돼지가 배달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요, 작가님?
* 사진은 알라딘 책 소개에서 가져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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