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세상에 보내는 가슴먹먹한 기록[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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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큐브 하나를 풀어내는 것과 같다.
최대한 단서를 모은 다음 숨을 들이쉬고 나서 순서대로 풀어나간다.
쉽게 풀리기도 하고 중간에 턱 막히기도 한다.
그래도 어쨌거나 과정을 즐기며 다 풀고 나면 성취감과 함께 고른 숨을 커다랗게 내쉬게 된다.
울 아들이 큐브를 푸는 걸 보면 무슨 공식에 따라 척척 해내던데 나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탓인지 추리소설의 공식에 대입해서 문제를
풀어내지는 못한다.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추리소설은 우리에게 현실과 다른 놀거리를 제공한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상쾌'함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거라고 한다.
사람이 죽는데 상쾌함이라니, 하는 이상한 번감이 일지도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서 죽음은 현실에선 일어날 리 없는 가공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습니다, 라는 초대다.
소설이 끝나면 다시 아무 일 없는 무사평온한 세계로 돌아올 수 있으니 안심하고 발을 들이라는 말이다.
추리에서 변하지 않는 공식이라 함은 일단,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리라.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연립주택을 지나가던 노숙자가 피냄새를 맡고 경찰에 신고한다. 피해자는 심장에 칼을 찔려 죽었는데 기묘한 것은
잔혹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표정에서 행복감마저 느껴진다는 것이다.형사 K와 감식관 C는 시체 옆에서 피에 젖은 노트 한 권을 발견하고 기묘함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한발짝 걸어들어간다. 어찌된 일인지 노트에는 범인과 피해자의 문답으로 읽히는 Q&A가 영어로 적혀 있다.
Q. 세상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Q. 당신은 누구?
Q. 세상에 사랑은 존재하는가?
질문은 간결하다. 철학적이기 까지 한 질문이지만 답을 읽어가다 보면 훌륭한 추리소설의 구성과 반전이 드러난다.
불행한 어린 시절, 이라기보다 자신의 의지가 발현되기도 전인 처음, 그렇다, 시작부터 꼬일대로 꼬여 버린 인생은 Q에게 세상이 잔혹하다는
인식을 뿌리내리게 했다.
Q는 아무 죄도 없는데 사랑해주어야 할 사람에게서 버림받았다.
사랑이 넘쳐야 할 성당에서 버림받았다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온 Q의 마음에는 공허함만이 남아서 그 마음 속에 깊고 어두운 공동을 품게
되었다.
성당은 어리고 약한 이들의 목숨은 구해주었지만 마음까지 지켜주지는 않는다, 라는 아이러니.
따스한 것을 보면 입에서 쓴맛이 올라오는 Q는 한 사건을 계기로 더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게 됐다.
우리는 이날 밤 부조리한 현실에 품은 분노를 떨쳐버리고 잔혹한 세상을 받아들였다.-38
괜시리 무겁고 슬프고 불쌍하다.
노트 속 담담한 문답에는 일기도 포함되어 있다.
마음 속 찌꺼기를 가감없이 토해내는 일기라는 형식이 애절함을 더한다.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두 사람이 만났다. 그 만남의 결과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살인이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부주의로 짓밟힌 어린 마음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힘들었다.
마음 하나를 잘 돌보는 일에는 많은 것이 필요함을 알겠다.
따뜻한 사랑과 관심, 그로 인해서 자라나는 떳떳한 자존감. 나를 알아주는 친구.
고바야시 히로키의 데뷔작인 [Q&A]는 온다 리쿠의 [Q&A]처럼 문답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인터뷰는 아니다. 게다가
살짜쿵 비밀을 하나 말해주자면, 위의 사진에서 [Q&A]의 글자 크기에 주목하라. [Q&A]는 문답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잔혹한 세상에 보내는 가슴먹먹한 기록[Q&A]
끝내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잔혹한 세상과 그들이 마주한 처절한 현실에서 택한 결말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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