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설까치 선생은 엄지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사람은 남을 도우며 쾌감을 느끼기도 하는 동물이다.
내가 한 일로 인해 누군가가 기뻐한다면 기분이 좋지 않은가?
그 누군가가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기분이 더더욱 좋을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웃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혼자 흐뭇해하는 것,
이런 게 진정한 사랑이다.
이 반대쪽에 집착이 있다.
미모의 여인이 어려운 지경에 빠졌을 때, 그를 도와주고 대가를 받으려는 그런 행태를 난 집착이라고 한다.
그녀를 위해 마약을 운반해줬는데, 볼에다 뽀뽀 한번 해달라는 게 뭐 그리 나쁘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짝사랑한다면, 그녀가 볼에다 해주는 뽀뽀는 내가 마약을 나르며 감수해야 할 위험보다 몇 배 더 가치가 있다.
그러니 “위험한 일을 해줬는데 그깟 뽀뽀 가지고 왜 그래?”라고 항변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 도움을 줬다고 뽀뽀를 해달라는 사람과는 오래 관계를 맺어선 안된다.
<검은 빛>은 사랑과 집착에 관한 얘기다.
인구가 얼마 안되는 조그만 섬에 사는 노부유키는 같은 섬에 사는 미카를 사랑하며,
둘이 결혼해 같이 사는 꿈을 꾼다.
어린이들의 꿈이 흔히 그렇듯 그 후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그 둘을 다른 세계로 떨어뜨려 놓고,
둘은 그냥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노부유키는 여전히 미카를 사랑한다고 믿으며,
그녀가 도움을 청했을 때 기꺼이 그 부름에 응한다.
미카가 볼에 뽀뽀를 해줄 것을 기대하며.
노부유키는 미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생각했지만,
그는 미카에 집착했을 뿐, 사랑한 건 아니었다.
책의 후반부에서 노부유키가 더없이 찌질해 보였던 건 그런 이유였다.
이 책에서 느낀 점 몇 가지 더.
하나. 어릴 때 예쁘면 연예인이 될 수 있다.
둘째, 만으로 열세살 짜리를 어떻게 해보려는 변태 아저씨는 세상에 많다.
셋째,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엔 쉽다. 아, 이건 범죄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