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부리의 서재

이건 외국의 버킹검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버킹검대 의대에 근무하는 ㅅ모 교수가 4년짜리 연구비를 받았다. 

하지만 ㅅ모교수에겐 그 연구를 수행할 능력이 없었고, 

그렇다고 배워서 연구를 할 의지도 없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안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어느덧 4년이 지났다. 

이젠 연구결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시기. 

ㅅ모 교수는 조교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이건 들은 얘기다. ㅅ교수는 이 사실을 부인했다)

" 뭔가 좀 만들어 봐라. 이건 논문도 아니고, 결과보고서는 아무도 안본다." 

하지만 아무도 안보는 건 아니었고, 

워낙 조작을 허술하게 한 탓에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조작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게 문제가 되자 ㅅ교수는 조교에게 말한다. 

"니가 다 뒤집어 써라." 

조교는 조교직에 사표를 냈고, 대학원 박사과정도 자퇴를 한다.  

그 다음부터 ㅅ교수는 "그 조교가 원래 좀 이상한 애였다. 걔 때문에 내가 큰 피해를 봤다"고 떠들고 다녔다.

사건이 그렇게 마무리되었을 무렵, 평소부터 버킹검 대학에 관심이 많았던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흥분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우리나라도 아닌 외국에서 말이다.

그 구성원 모두가 그런 결말에 동의한 것도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난 연구비의 책임자를 찾아가 문제의 결과보고서를 얻었고, 

"인터넷과 언론에 알리겠다"고 했다. 

담당자는 내 눈빛을 보고 '진짜구나' 싶었고, 

버킹검대학에 연락을 했다. 

 

내가 인터넷 악플을 다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라  

사람들은 내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버킹검대는 난리가 났다.

ㅅ교수는 "쟤 좀 말려달라"고 여기저기 전화를 넣었고, 

내가 버킹검 유학 시절 날 지도했던 ㅊ교수는 "내가 다친다"며 날 만류했다. 

하지만 내가 거기서 멈춘 건 버킹검대의 주임교수 때문이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ㅅ교수가 그랬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나도 ㅅ교수를 자르고 싶다. 

하지만 내 권한은 아니다. 약속한다. ㅅ교수를 앞으로 승진시키지 않겠다. 

4년간 승진을 못하면 잘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주임교수는 버킹검대 동문들에게 메일을 보내 이 사건을 더이상 언급하지 말 것과 더불어 

ㅅ교수에 대해 책임지고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2009년 1월, 난 ㅅ 교수가 부교수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식을 듣고 놀란 친구가 말한다.  

"세상이 다 그렇지 뭐."  

난 결심했다.

세상이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만은 그렇지 않게 만들어 보겠다고.  

하지만 내가 가진 건 너무도 미약했다.  

당사자인 조교는-지금 어머니 일을 돕고 있단다-죽어도 증언을 해줄 수 없다고 버텼고, 

더이상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녀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내가 아는 기자라곤 한겨레와 오마이가 전부였다. 

인터넷에 올려봤자 얼마나 파장이 있을 것인가. 

아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명예훼손 당하기 십상이다"란 말만 돌아온다. 

그래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결과보고서를 조사하고 있을 무렵, 

지원군이 도착했다. 

KBS 기자가 어디서 들었는지 이 사건을 취재 중이었고, 

어떤 경로로 해서 나한테까지 연락이 된 거였다. 

그가 웬만한 건 다 알고 있었기에 내가 추가로 해줄 말은 별로 없었다. 

 

그 기자는 어제 버킹검대에 전화를 걸었다. 

작년에 이어 버킹검대에선 난리가 났는데, 

그 규모는 작년과 비교할 만한 성질은 아니었다. 

난 여러 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그들이 물은 건 이거였다. 

"Is it you?(그거 너니?)"  

내가 제보를 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어차피 할 일이었기에 나라고 오해받는 게 그리 억울하진 않다. 

그 댓가로 난 이제 버킹검대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고, 

밖에서도 그쪽 분들을 피해 다녀야 할 것이다. 

그런 정도의 손해 역시 내가 감수해야 할 몫인지라 역시 억울하진 않다. 

 

지금 버킹검대에서는 기자의 취재가 진행 중이란다.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