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별을 다섯개 주기 위해 나는 다른 책 들에 다섯개 줬던 별을 다 한개씩 빼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한 책인데 , 단 세장짜리 첫번째 단편 ' 관리의 죽음' 을 읽고 부터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정신이 번쩍들었다. 유머 소설인 짧은 단편 ' 관리의 죽음'의 결말은 다른 단편소설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체호프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집약적으로 나타내준다.
러시아 작가들의 책은 항상 부담스럽다. 등장하는 이름들이 길고 낯설고, 스토리도, 결론도, 사랑도 다 낯설다. 다양한 책들을 못 접해 봐서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러시아 작가들의 이야기는 독특하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뭔가요 라는 질문에 딱 이거라고 답하기 힘들듯이, 가장 감명깊게 봤던 영화가 뭔가요라는 질문에도 비슷하게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있다. 감명 깊다고 하긴 뭐하지만,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이런 젠장! 망할 영화! 했던 영화. 그 영화의 제목은 '러브 오브 시베리아' 다. 배우도 감독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티푸스에 걸려 죽는 사람이 없는 것만 빼고 이 영화는 사실적이고, 그래서 잔인하고, 그래서 또 사실적이고, 그런 점들이 나에게 오랜만에 그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체호프는 러시아의 다른 존경받는 작가들과는 달리, 민중에게 향해야 할 곳을 가르쳐주기 보다는 현실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드러냄으로서 곪아 있는 여러 곳들이 치유되기를 바랬었다.
러시아라는 저 먼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활상이 이 책을 읽는 지금 이 곳에서도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체홉의 힘이다.
별로 잘 팔릴것 같지 않은 체홉의 책이지만, 워낙 다작이었기 때문인지, 체홉의 책은 우리나라에 희곡도 단편들도 꽤나 많이 번역되어 나와 있어서 남은 체홉의 책들을 찾아보는 기쁨이 아직 나에게는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