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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 시편, 기도의 언어
  •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 16,200원 (10%900)
  • 2025-08-20
  • :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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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장대한 독주곡 <샤콘>은 짧은 베이스 패턴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곡이다. 동일한 화성 진행이 수십 번 거듭되지만, 이 반복은 감각을 무디게 하는 지루함에 머물지 않는다. *되풀이될수록 감정은 더욱 응축되고, 확신은 깊어지며, 지금 이 순간은 과거의 굴레에서 조금씩 해방된다.*
이러한 '반복을 통한 자유와 확신'의 역설은 독실한 신자였던 바흐의 음악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매번 우리에게 영감을 건네는 시편의 언어에서도 동일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장피에르 프레보스티의 <시편, 기도의 언어>는 바로 이 '반복'되는 마흔 가지 핵심 어휘 속에 담긴 시간을 초월한 생명력과 영적 메시지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히브리어의 구조와 의미, 그 안에서 맞물린 영성적 리듬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밝힌다. 시편의 반복이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신학적 장치이자 영혼의 호흡이라는 것을.

어휘의 관점에서 시편집은 매우 독특한 특징을 보이는데, 바로 반복이다. 시편 기도의 어휘가 광범위하지는 않아서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되어 사용되는데, 이 사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p.12

어근 중심의 히브리어는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단어들이 다양한 형태로 되풀이된다.
예를 들어, ḥesed(자비), yasha(구원), barakh(찬미) 같은 어근은 형태를 달리하며 시편 전체에 여러 차례 언급되면서 시편 기도의 신학적 기둥을 이룬다. 반복은 결핍이 아니라 심화이자, 성령의 변주다. <샤콘>이 반복 위에 쌓아 올린 변주처럼 시편도 순환되는 어휘에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변주한다. 반복을 통해 끝없이 상승하는 <샤콘>과 같은 결을 공유하며, 시편은 영혼을 고양시킨다. 심연을 뚫고 끝없이 비상하는 새처럼.

인간은 단조로운 일상과 반복되는 기도 앞에서 무뎌지기 쉽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과 신앙은 그 되새김의 자리에서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드러낸다. 독실한 신자였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샤콘>에서 발견된 진리와, 시편의 마흔 가지 핵심 어휘가 그렇다. <샤콘>이 단순한 네 마디 화성 위에서 수많은 변주를 견뎌낼 때 벅찬 희열이 솟아오르듯 , 시편 역시 그렇다. 기도의 누적은 우리를 영적 번아웃에서 벗어나게 하고 나날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인도한다. 결국 반복의 궤적은 지루함이 아닌 시간을 견디는 힘이며, 익숙한 고통이 아닌 영원한 자유와 확신의 길로 이어진다. 우리는 지금 그 숭고한 변주의 길 위에 홀로 또 함께 걸으며, 쉼 없이 호흡하고 있다.

그분께서 불어넣어주신, 성령의 숨결로.


*내털리 호지스의 '엇박자의 마디'에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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