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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 한번 읽어 봅시다! 가톨릭 신학과 교리 해설
  • 조한규
  • 16,200원 (10%900)
  • 2025-11-01
  • :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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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수녀님 손에 이끌려 나는 예비자 교리를 듣기 시작했다. 성호 긋는 법부터 각종 기도문, 그리고 십계명까지 신앙의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숙지하며 조심스럽게 가톨릭 신앙에 입문했다. 세례를 받은 뒤엔 주일 미사를 거르지 않았고, 고해소에도 정기적으로 들리며 나름대로 ‘신앙인답게’ 살아가려 애썼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교리 시간에 들었던 내용들은 어느새 휘발됐고 나는 점점 성당과 멀어졌다. 그 시절 나는 신앙의 깊이를 헤아리기엔 너무나 어리고, 그 무게를 감당하기엔 너무 미숙했다. 몇 번의 냉담 끝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했다.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느낌. 그 감각은 오랫동안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오래전 들었던 교리 수업을 다시 가슴에 새기고 싶었다. 하지만 흘러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미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내게 한 권의 책이 찾아왔다. 홀로 추억 속에 잠겨 있던 나를 일깨우듯.

예수님의 탄생에서 죽음, 부활에 이르는 여정을 교리적으로 풀어낸 책은 많다. 하지만 그 사건들을 신학과 철학, 그리고 인간의 실존으로 확장시킨 책은 드물다. 조한규 신부님의 <한 번 읽어봅시다!>라는 책은 단연 후자에 속한다.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깊이 와닿았던 구절은 ‘인간은 스스로 완성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늘 타인과 비교했으며 과거의 실수에 집착했고, 인정욕구에 휘둘려 매 순간 위태롭게 비틀대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흔들리던 내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란 신앙의 본질을 다시 가르쳐 주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손길 없이는 나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도 함께.

인간은 한편으로는 무한하고 긍정적인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완성에 이를 수 없고, 절대자의 도움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p.216

또한, 삼위일체가 머리로 이해하는 공식이 아니라 사랑의 구조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성부는 나를 존재하게 하시고, 성자는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밝혀주며 성령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내 마음 깊은 곳을 사랑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인간은 이 삼위일체의 ‘흐름’ 안에서만 완전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동시에’ 존재하는 신비로서.

삼위 하느님은 같은 분이시고, 세 위격 모두 한 번 하느님이십니다. p.222
성부의 계획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도움으로 이루어집니다. p.223
성령의 활동은 삼위일체 하느님과 연관되고, 하느님의 활동에 대한 모든 답은, 모든 게시에 대한 답인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p.240

신앙은 단 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넘어지고 흔들리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긴 여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느님께 닿을 수 있다.

성인들은 죄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인간이었지만, 하느님 선택과 은총을 통해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부르심에 응답한 후에도 자주 걸려 넘어졌지만, 그래도 끝까지 하느님께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p.28

결국 이 책은 지식의 단편적 나열이 아닌, 세상과 존재의 경계를 허무는 '사유의 흐름'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신앙의 본질을 마주 보게 한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게 한다. 더는 과거에 얽매여 본질을 왜곡하지 않고 새로운 신앙의 첫 장을 펼치도록.
삶의 무게중심이 위태롭게 흔들릴 때마다, 나는 내 오른편에 계신 그분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새로운 여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신앙 안에서 맥동하는 나의 가장 단단한 심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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