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의 본질, 사랑에 대한 기도문
biche7923 2024/11/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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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기 쉬운 사도신경
- 크리스토프 뒤포르
- 9,000원 (10%↓
500) - 2013-01-30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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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나갔을 때, 어른들이 암송하는 길고 어려운 기도문이 낯설어 두 손만 마주잡고 뻘쭘한 자세로 서있던 기억이 난다. 미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 작은 글씨가 빽빽하게 인쇄된 얇은 종이 책자를 내밀며 엄마는 말했다. "이걸 다 외워야 미사를 드릴 수 있다. 사도신경과 주모경은 다음 주일까지 외우도록 해라!" 책자의 한 면을 차지할만큼 긴 분량에 난해한 용어들만 가득했던 기도문, 나는 그렇게 사도신경을 처음 알게 됐다.
크리스토포 뒤포르의<알기 쉬운 사도신경>은 낯설고 어려운 용어들 때문에 기도문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계적 암송만을 반복하는 신자들(나 같은)을 위한 입문서이며 가톨릭 신앙의 정수가 함축된 사도신경에 대한 깊은 해석이 담겨있는 책이다.
사도신경은 전례에서 반복적으로 고백하는 문구가 아니라 신앙인으로서의 모든 존재를 걸고 고백해야 하는 신앙의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하는 교회의 신앙은 사실 사도신경에 다 담겨 있습니다. p.5
예수의 생애를 묵상하고 죽음을 넘어 부활로 이어지는 영생에 동참하는 것, 가톨릭 신앙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하느님께 드리는 영적 고백이며 믿음에 대한 확신을 드러내는 기도문이다. 모든 한계를 초월해 매 순간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닿고자 하는 영적 열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기도문은 육체적 한계에 갇힌 인간이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한 분이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한다는 하나의 선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일치를 이루는 사랑의 통교입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며 동시에 세 분입니다. 이것을 삼위일체 Trinitas라고 말합니다. p.120
스스로 인간의 육신을 취하셨던 그리스도는 타고난 신성으로 피조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셨고 그들의 불완전함과 나약함을 오직 사랑으로 채우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 수난의 길을 자처하셨다. 작고 연약한 인간의 육신이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영원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하느님의 침묵과 부재로 숱한 방황과 번민을 거듭했던 인간이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 앞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찬란한 순간, 그저 사랑이다.
산다는 것, 그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p.161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신자들과 어울리기 싫어 미사만 겨우 참례하는 나에게 하느님은 말씀하신다. '너 자신을 떠나 나에게 오너라.' 에고에 갇힌 신앙은 자기 기만으로 이어져 나 자신을 붕괴하고 결국 하느님 사랑을 부정하는 길이기에 그분의 말씀은 너무나 자명한 울림으로 내게 닿는다.
"삶이 공허하고 신앙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천천히 사도신경을 암송해보세요. '저는 믿나이다' 이 한 마디 속에 응축된 하느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느끼게 될 날이 올거예요."
오래전 신부님께 들었던 강론을 되새기며 나직한 목소리로 사도신경을 암송해본다. 내가 바치는 사도신경이 오직 한 분이신 그분께 향할 수 있기를. 나의 고백과 사랑이 그분에게 닿아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길 기도하며.
하루하루 조금씩 내 존재를 지워가며 그분의 사랑을 채워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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