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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 나를 찾아 떠나다!
  • 제임스 마틴
  • 12,420원 (10%690)
  • 2012-07-20
  • : 308
"하느님도 이해하실 수 없는 게 세상엔 더러 존재하지요. 예를 들자면...예수회 사제들 속내라든가." 영화 <Pope Francis>에 등장하는 대사다. 형식적인 규율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신앙의 본질에 누구보다 충실한 교황님의 신심과 덕행을 절로 가슴에 새기게 됐던 대사였다. 그 시점부터 교황님을 비롯 예수회 사제들에 대한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했고 그분들의 저서를 읽으며 예수회 특유의 독특한 영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제임스 마틴 신부의 <나를 찾아 떠나다!>도 그런 연유에서 선택한 책이었다. 순종과 정결을 미덕으로 삼으면서 가난한 삶을 지향하는 사제들과 비슷한 결을 가졌지만 제임스 마틴 신부의 여정은 다소 남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성당에 다니며 남다른 신심을 키워가다 부르심에 응답해 성소를 품고 살아가는 보편적 사제의 삶과 다른 행보가 이 책엔 담겨 있었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대기업에 입사해 뉴욕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갔던 신부는 누구나 선망하는 주류의 삶을 영위했고, 영적인 갈망이나 영성적 깨달음은 그와는 거리가 먼 세계처럼 여겨졌다. 부모님을 따라 잠깐 성당에 다녔던 유년기 시절의 관성을 따라 가끔 미사에 참례하긴 했지만, 단순한 기복 신앙을 넘어서지 못했고 부르심의 은총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듯 보였다. 직장 생활의 갈등과 피로가 누적되고, 부모님이 별거를 시작하면서 그의 일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구축해온 여피적 삶에 균열이 찾아온 것이다. 생전 읽지도 않았던 영성 도서를 탐독하고,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을 읽으며 예수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관련 책자를 뒤적이며 성소에 대해 고민했지만 그는 주저한다.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속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엄청난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개념조차 희박했다. 직장 생활에서 겪는 좌절감과 매너리즘, 인간관계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고 뉴욕이란 대도시의 화려함은 공허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면의 결락을 메우기 위해 그는 예수회 입회를 결정한다. 주변의 충고와 만류를 뿌리치고 세상과 인연을 끊은 것이다. 처음엔 그의 선택이 다소 무모하게 여겨졌다. 당장 눈 앞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도피처로 예수회를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경쟁심을 조장하는 기업 세계 특유의 냉혹함과 인간성 경시, 물질중심적 가치관에 대한 환멸을 견디지 못해 예수회 입회를 서둘렀지만 그에겐 신앙의 본질에 대한 기본적 성찰이 부족했다. 대기업 문화에 익숙한 젊은이가 금욕과 절제를 기본 모토로 깔고 있는 수도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런지 우려가 됐다. 그러나 부르심의 은총은 그를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인도했다. 성찰과 내려놓음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매 순간 하느님께 닿으려는 그의 노력은 조금씩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예수님과 함께 있고, 그분과 동행하고, 좋은 친구에게 의지하듯이 그분에게 의지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p.176' 예수님을 친구처럼 의지하면서 기도와 봉사로 영성 생활에 매진하던 그는 '기도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p.221' 된다. 사소한 일마다 지시를 받는 일상이 적잖은 스트레스로 다가왔지만 그 안에서 하느님 현존을 느끼며 신부는 기도와 묵상, 봉사에 집중한다.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을 돌보며 가끔 육체적 혐오감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점점 의식이 꺼져가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꼈다는 기록은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하루하루 죽음과 가까워지는 그들의 모습은 고통받는 예수님과 닮아있었다. 부활의 찬란한 영광보다 십자가 고통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 운명,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자 영성의 본질이라는 깨달음이 강하게 와닿았다. 대기업의 과도한 경쟁 구도와 서열 문화 안에서 늘상 인정 욕구에 시달리며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부쳤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신부는 고백한다. '기도와 진짜 신앙은 거룩한 사람들의 몫이지 나와는 상관없었다. 하느님은 아주 멀리 계시는 것처럼 보였다. (중략) 예수회원으로서의 내 삶을 채우고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나를 덮쳐 왔다. p.373' 불완전한 인간 본질에 대한 통찰은 우리를 언제나 용서하고 사랑하며 기다리시는 예수님에 대한 순명으로 그를 이끌었으며 전혀 다른 존재로 그를 각성시켰다. 병원에서 일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고, 십자가 수난으로 구원을 완성하셨던 그분의 신비는 완전히 신부를 사로잡았다. 나자렛의 평범한 소녀였던 성모님의 잉태처럼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삶의 초대로 그는 예수회 사제의 길을 걷게 됐고 세속적 타성에 물들었던 과거를 떠나보내게 된다. 하느님과 무관한 인생을 살아왔노라 거듭 강조했던 제임스 마틴 신부. 책을 읽으면 그런 고백이 겸손의 표현으로 느껴질 정도로 부르심의 은총은 매 순간 신부에게 열려있었다. 여피적 정체성에 충실했던 젊은 시절, 간헐적으로 바쳤던 기도 안에서 천사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을 것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28>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던 성모님, 구세주의 어머니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불가능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느님 안에서 전혀 다른 존재로 거듭난 제임스 마틴 신부의 거룩한 여정에 오직 은총만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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