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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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날들...
  • 분노의 포도 1
  • 존 스타인벡
  • 11,700원 (10%650)
  • 2008-03-24
  • : 6,339

 

 한참을 망설이게 되는 제목이었다.<분노의 포도>. 뭘 번역한건가 싶어서 원제를 봐도 grapes가 있으니 내가 알던 그 포도가 맞는데. 의문이 이해로 바뀌기 시작한 건 1권의 중반부부터. 책은 술술 넘어갔고, 가끔은 무릎을 쳤고, 또 가끔은 한참을 생각해야했다. 먹먹한 마음과 공허한 마음이 교차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현실을 생각하게 됐다. 이 소설이 출간된지 한참 지난 지금에도 왠지 어색하지 않은 상황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이야기는 살인죄로 복역하다 가석방 되는 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고향으로 돌아온 톰은 황폐화 된 토지와, 그 땅덩어리에서 밀려난 가족들과 캘리포니아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한평생을 작은 땅 어리에 의지해 살던 사람들이 트랙터가 몰고온 대량 생산과 노동력 절감으로, 한순간에 잉여인력이 된다. '먹고 살아야 하니' 이들은 길을 떠난다. 비옥한 토지와 일자리가 넘치는 그곳, 캘리포니아로. 도로에서 톰은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진 여행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형은 스스로 가족을 떠나고, 여동생의 남편조차 임신한 동생을 두고 떠나가버린다.

 

 

 나는 기다렸다. 이야기속의 톰이,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을 형성하고, 그들의 소리를 내기를. 그의 목소리로 하나가 아닌 둘의 힘을 보여주기를. 이야기는 결국 아무 형체도 없이 스러진다. 톰이 무언가를 '해 내' 기엔 두 권은 너무도 짧은 분량이었을까. 책장을 덮는 순간 깊은 공허가 몰려왔다. 인간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 낸 무형의 실체에 지배 당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 일터니 나는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물질의 비정함을 느껴야 하는지, 환경 앞에 무너지는 가족을, 아니면 그 와중에도 중심을 잡는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이거나 친절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속의 상황은 절대 우리와 거리가 멀지 않다. 언젠가부터 기계가 모든 일들을 해내게 되었고, 편리함만큼 인간의 쓸모는 사라져간다. 한 사람에게 부가 집중되고 나머지는 모두 가난해 지는 상황 또한 그렇다. <분노의 포도> 에는 어떤 방향을 추구 해야하는지 드러나 있진 않다. 단지...힘들고 아픈 사람들의 상황을 내 마음과 같이 느낄 수 있을 뿐. 그리고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먹먹해진 마음을 닫고 이 소설이 이야기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풍족하게 수확한 포도는 사람들의 분노를 안고 싸구려 포도주가 되었다. 사람들이 먹을 것도 부족한 이 마당에, 무엇이 그들의 손에 분노를 쥐어주는가.

 

등 뒤의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믿음에 영우너히 불이 켜질 만큼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p.252.
"아냐.그렇지 않아. 너도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면 안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지치기만 할 뿐이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게 되는 삶은 하나뿐이야. 만약 내가 그 가능성들을 다 생각해 본다면 견디기 어려울거다. 넌 아직 어려서 앞날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난 그냥 지금 이 길만 생각해. 그리고 식구들이 언제쯤 돼지 뼈를 더 먹겠다고 할지, 그런 것만 생각해." p.256
"그렇지 않아요, 여보. 남자들은 단계별로 인생을 살아요. 아이가 태어나고 사람이 죽는 것, 그게 한 단계죠. 농장을 일구고 그 농장을 잃는 것, 그게 또 한 단계예요. 하지만 여자들에게 삶은 전부 하나의 흐름이에요. 개울처럼, 소용돌이처럼, 폭포처럼. 강처럼 그냥 계속 흐르죠. 여자들이 보는 인생은 그래요. 우린 그냥 죽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고요. 조금 변하기야 하겠지만, 삶은 계속되는 거예요." 2권.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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