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아 혹시 이건 그저그럴듯한 연애소설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 그만읽기를 고민하던 책. 내 예감은 깔끔하게 빗나가고 말았지만...이 책은 생각하던 것 보다 더 큰 생각거리 들을 던져 준다. 장은진 작가님의 책인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를 읽고 전작들을 역주행 하다 읽게된 이 책은 가벼운 문체나 흥미로운 관계설정을 넘어서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뭔가 찝찝한 기분을 남긴다. 아마, 나 또한 앨리스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어쩌면 그녀와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른이라는 나이, 대한민국, 더구나 서울에서 그 나이에 부모에게 물려받은 '한 재산' 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집 갖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민석은 그런 기회를 잡은 남자, 시세보다 싼 가격에 산 집 306호. 이 행운과 같은 일은 입주 첫날 부터 신기한 이웃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10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온 적 없다는 새 이웃은 그에겐 루이스, 자신에게는 앨리스라는 별명을 하사하며 특이한 이웃간의 관계가 시작된다. 인터폰 명령과 '쥐구멍'으로 쇠파이프를 내 보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며 본인이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는 방식으로 앨리스는 천천히 민석의 삶 속으로 파고든다.
처음에 민석은,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그녀의 존재를 상상하며 달갑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서서히 인정한다. 그 속에도 삶이 있다는 사실을. 그냥 그렇게 살 것을 선택한 것일 뿐이라는 걸. 나또한 그녀의 이런 비상식적 태도가 처음에는 너무 거슬렸다. 도입부에 민석의 이야기 이외에 그녀, K, P의 이야기를 통해 앨리스가 바로 그녀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발생한 그런 일들이 왜 그렇게 극단적인 은둔생활로 이어지게 되었는지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발생한 일이 그에게 어떤 모양의 상처를 남기며, 그 상처가 어떤 선택으로 이어지는 지는 전적으로 그 '누군가'의 몫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상처 받은 그 누군가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 이므로.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줄 것과 보여주지 않을 것을 선택하며 산다. 적당히 금을 긋고 벽을 치며 내 자신을 보호한다. 아마도 상처받지 않기 위하여. 앨리스가 선택한 극단적인 방식은 아마 '극단적이지' 않은 방식 일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모습을 숨겼을 뿐, 그녀는 보통 사람들처럼 외부와 소통하고 선택하고 대화한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받을 상처를 최소화 한다는 점에서, 상처받고 무시당할까 전전긍긍하는 나보다 훨씬 용감하다. 결국 '고립'되었다는 건 상대적이다. 그녀와 같은 물리적 고립보단 아마도 정서적인 고립이 더 무섭지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속 305호는 잠겨 있는지, 열려있는지, 소통하는지, 막혀 있는지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누구나 마음속에 305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우리는 참 같은 사람들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