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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날들...
  • 앨리스의 생활 방식
  • 장은진
  • 11,700원 (10%650)
  • 2009-06-22
  • : 265

번역은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습득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나는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바뀌는 순간 맛보게 되는 오묘함에 놀라곤 한다. 나를 영매로 언어가 번역되는 그 순간이 바로 거대한 나라와 나라가, 역사와 역사가 소통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갈등과 혼돈과 오해가 풀리고 이해되는 시점. 그 시점에 나는 아무리 다른 언어와 문화, 그리고 생활 방식을 가졌더라도 살아간다는 건 어디서나 처절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므로 번역은 늘 신중 정확해야 한다. 벤야민의 말처럼 원문을 의미에 맞게 재현하는 자유와 원문에 충실하려는 성실성이 번역가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결국 번역이란 바벨탑에 분노한 신에 의해 생겨난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신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어리석지만 신은 현명하다. 혼잡한 언어 때문에 인간은 적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65쪽
"책이 아무리 훌륭하고 완벽해도 끔찍한 현실을 따라오진 못해. 진짜 완벽한 게 옆에 있는데 왜 가짜에 열광해야 되는데? 책을 읽는 건 자기 삶이 그럴듯하지 않다거나 격정적이지 않다거나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방증으로 느껴져. 책은 해결책이 못 돼."-72쪽
마음만 맞는다면 친구는 평생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하나가 마음을 돌려 버리면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99쪽
"연극은 이해 안 되는 걸 이해하게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해 안되는 걸 이해해야만 할 때가 있지. 벌어져 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연극은 끝나지만 삶은 계속되는 거니까."-140쪽
"아무리 얘기해도 당신은 내 말을 믿지 않아. 보이지 않으니 믿지 않는 거라고. 당신은 벌써 증명을 요구하고 있잖아. 진실에는 증명이 필요없어. 그 자체가 증명이니까. 증명은 거짓에나 필요해. 당신은 믿어야 하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구분 못 하고 있어."-153쪽
"이런 처지니까. 동물은 인간의 생을 압축해서 보여 줘. 눈과 귀가 멀고 걷지 못하고. 나중에는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생."-179쪽
"여행을 해 보지 않은 칸트는 독서와 상상력 만으로 탐험가보다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어. 나 또한 인터넷으로 사귄 친구가 수백 명이야.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하겠지.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인간관계가 성립될 가능성을 가진 곳이야. 외모, 학벌, 동, 집안 따위를 따지지 않고도 정신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180쪽
"너같이 운 좋고, 부족한 거 없이 자란 놈들은 이해할 줄 몰라. 이유를 먼저 따지려고 하지. 이유는 과거야. 중요한 건 현재고. 현재에는 이해만 존재해. 너 같은 놈은 누님이 은둔하게 된 과거이유를 캐내는 데만 관심 있고 현재 삶은 이해하려고 들지 않잖아.삶의 방식은 다양해. 자신의 삶을 견디기에 가장 좋은 방식이라 선택한 거겠지."-186쪽
삶이란 냄새나는 시궁창에 빠져 있는 것과 같지만 살기 위해서는 그곳에서도 음식을 주워 먹어야 할 때가 있다. 끔찍하게 싫고 구역질이 나더라도. 그러려면 감당할 수 없는 고통부터 이겨 내야 한다.-217쪽
그녀는 그떄 알았다. 어떤 방식이든,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사람은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짝을 이루려 하고, 그 짝을 끝까지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혼자가 된다는 건 외롭다기보다 무서운 것이다.-240쪽
이해는 삶을 지속시킨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절반의 은둔자이거나 잠재된 은둔자다. 그리고 누구나 다 결국은 외톨이다.(중략) 내가 숨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감추어 외톨이로 만든다. 오늘날 은둔의 개념은 모호해지고 확장된다. 반드시 어떤 공간에 숨어들지 않더라도 자기 안에 갇혀 마음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은둔자다. 어쩌면 세상을 피해 숨는 건 약하기 떄문이 아니라 강하고 용기 있기 떄문에 선택할 수 있는 삶인지도 모른다. 사회와 인간을 더 이상 증오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감추는 것. 세상을 피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한 또 다른 도전이자 애정. -250쪽
나쁜 일이 지나고 나면 삶은 더욱 견고해지는 법이다. 불행하고 불길한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될 수 있다.-360쪽
사람은 누간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서 함께 숨쉬고 또 상처와 고통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방식이 다를 뿐 그녀 또한 그들 속에 섞여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한때는 낭비라고 호언했던 그런 삶을, 결국 그녀가 살아오고 있었다. 은둔이란 세상과의 결별이 아니라 세상과의 또 다른 관계 맺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삶은 불행하지 않았다.-361쪽
모두를 감쪽같이 속였던 지나, 연극배우 수연, 텍스트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나의 글과 책들. 모두들 가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았다. 어쩌면, 진짜 자기 삶을 살고 있었던 건 그녀인지도 모르겠다. 305호 그곳에서, 자기만의 존재 방식으로 살고 있는, 자기만의 생활 방식으로 소통하고 또 사랑하며 살고 있는 그녀, 앨리스.-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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