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에 나가보면 서평책이 참 많다. 나보다 책을 훨씬 더 많이 읽는 사람들의 술술 풀려가는 글을 볼 수 있어서 가장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그들의 '리스트' 다. 리뷰는 열심히 쓰지 않지만 그동안 열심히 알라딘과 오프라인을 들랑 거리며 책을 고르며 느꼈던건... 책 고르는 건 정말 어렵다! 다. 가끔 괜찮은, 혹은 신뢰가 가는 인물이 독서에세이를 내면 가장 먼저 슥슥 넘겨보며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건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단 하루 만에 내 마음을 찡하게 했던 이 책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정혜윤씨의 <책읽기 좋은날>의 한 꼭지에서 괜찮을까 싶어 집어 든 것이다.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하이퍼링크 같은 책 읽기...특히나 나중에 고른 그 책이 정말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면, 그 책을 소개해 준 전 책에 뽀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렇든 저렇든 내 손에 굴러들어온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주말의 무기력을 한번에 날려주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이라도 몇 호흡씩 끊어 읽곤 했는데 호흡도 편하고 내용도 술술 넘어갔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 말을 심하게 더듬던 청년 한지훈과 늙은 강아지 와조의 이유없는 여행 속으로 훅 들어간다. 그의 여행의 규칙은 간단하다. 길에서 만난 '유의미한' 사람에게 번호를 부여해 주고 그날 밤 잠들기 전에 그들에게 편지를 쓴 후 답장을 기다린다. 답장이 올때까지, 여행은 계속된다. 한지훈은 자신을 0으로 설정하고 만난 사람의 순서대로 숫자를 붙여 나간다. 그리고 그 숫자속에 이야기를 채운다.
그러다 한지훈과 와조는 자신의 책을 스스로 파는 소설가 751을 만난다. 일반적이지 않았던 그 만남은 한지훈과 와조와 751 이라는 새로운 동행을 만든다. 함께 책을 팔고 잠시 함께 돌아다니는 동안, 한지훈이 왜 그토록 '의미없는' 여행을 계속 하고 있는지, 그가 그 여행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케 된다. 그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한 여행. 단 하루 동안 그에게 일어났던 상실을 인정하기 위한 여행. 한지훈을 보면서 한 사람에게 패어진 상처를 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여행을 시작한 그의 용기가 부럽기도 했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한지훈은 길에서 만난 번호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낸다. 절친을 집 주변에 짱박아 놓곤 매일 자신의 우체통을 사수하게 한다. '아무도 나에게 편지하지 않았다.'라는 체념적인 말이 매일 이어졌지만 그는 쉴새없이 편지를 보낸다. 그를 돌아오게 할 한통의 답장은, 그의 여행 전엔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 그는 와조로 인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그 덕분에 그를 돌아오게 할 답장을 만났다. 아이러니 처럼 생긴 이 일들이 가슴을 쳤다. 가끔씩 우리는, 아주 기다리던 일들을 우연히 만나곤 한다. 그리고 그 우연한 일들이 내 발을 현실위로 사뿐히 올려 준다. 한지훈은 기다리던 '답장'이 아니라, 자신의 오랜 친구 와조로 인해 현실위에 사뿐히 섰다. 왠지...그는 참 잘 지내고 있을 것 같다. 마음 한 켠이 싸해 지는...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