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왜 맨날 어느날 문득. 모든 걸 접고. 무작정. 길 떠나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야? 이정도 생각은 방구석에서도 할 수 있겠다고.한때 쏟아져들어오는 여행에세이 원고검토에 치여 한순간의 반발심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 물론 그 시기 유독 비스무리한 내용의 원고에 치여 배배 꼬이고 신경질적이 된 '타자'가 한 생각이니 오해는 말아주세요.
여튼, '방구석에서 뻗어나간 생각 모음집'이라며 기획안에 낙서처럼 써본 타이틀들 이름하여 <방구석에서 자라난 내생각> <거실생활자> 기타등등ㅎㅎㅎㅎ
아~ 근데 정말 이런 책이 있을 줄이야.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
물론 내 비루한 이유와 사정은 많이 다르다.ㅎㅎ1790년에 저자는 어떤 장교와 벌인 결투로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받는다. 이 책은 그 무료함을 달래다 탄생한 '여행문학의 고전'

“아놔~ 이냥반, 재밌는 냥반이네.”
저자 메스트르는 영혼과 동물성 사이에서 종종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휘둘리는 엉뚱함과 근거없는 생각의 전개과 황당함과 드 오카스텔 부인을 향한 무조건적 로맨틱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혼자 빵 터진 부분 중 한 단락. 아침잠의 달콤함을 급작스럽게 깨뜨리기 싫은 메스트르와 하인 조아네티가 연출하는 아침의 풍경이다.
... 나는 하인에게 내가 보통 일어나는 시간에서 반 시간쯤 전에 내 방에 들어오도록 일렀다. 나는 그가 살금살금 오가며 조심스레 아침을 맞이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내가 단잠에 빠져 있음을 확인해 주는 소리인데, 이 달콤함은 참으로 미묘하여 그 맛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나는 비몽사몽 상태로 조아네티가 준비를 마칠 시간과 내게 남은 얼마간의 시간을 조바심치며 헤아린다. 조아네티는 점점 큰 소리를 낸다. 조심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가 보다. 하긴 그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내 회중시계를 들여다본 그는 나를 깨우기 위해 시계 장식을 흔들어 소리를 낸다. 나는 짐짓 못 들은 척한다. 달콤한 시간을 더 늘리려고 이 가엾은 사람에게 떼를 쓸 생각은 없다. 그는 내가 다소 퉁명스럽게 시킨 일들이 겉으론 아닌 척하면서도 침대에서 더 오래 뭉그적거리려는 핑계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그는 모른 척하는데, 그런 그가 나로선 진심으로 고맙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내 방 여행하는 법> 57~58쪽 중
아침의 그 비몽사몽 상태를 즐기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에서 반 시간쯤 전에
하인에게 방에 들어오도록 이른
메스트르의 치밀함에 진심 경의를 표하며^^;
그와 하인 간의 진득한 기싸움에 저도 모르게
이불 속에서 조마조마해하는 메스트르의 입장에
자연스레 감정이입하는 건
나는야 타고난 게으름뱅이~(히죽)
이 외에도 끊임없이 피식피식 웃게 하는 책!
찌질한 듯, 엉뚱한 저자가 읽으면 읽을 수록 인간미 철철 넘치는 볼매다.
인상적이거나 나중에 인용하고 싶을 때 포스트잍을 붙이곤 하는데
이 책은 순~전히 웃겨서 그냥 못 넘어간 부분에 포스트잍 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