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이별
《나의 사전연명의향서》
김지수
북루덴스
2010년 4월 13일, 산뜻한 봄 내음이 이어지던 날 아버지는 향년 55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내가 만 16세 때의 일이다. 폐에 덕지덕지 자리 잡은 암세포에 끊이지 않던 기침이 온 집안을 채웠지만,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앞서 선행된 대장암 4기에 아버지는 장을 1m나 절제했다. 그렇게 배에 튜브를 삽관해 변을 빼내야 했음에도 결국 완치에 성공했고, 식단도 철저하게 조절했다. 그러나 2년 만에 재발한 폐암도 4기였고, 암세포는 1년 만에 뼈와 뇌 등 온갖 곳으로 전이했다. 아버지는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기 전까지도 단 한 번도 희망을 놓지 않았고, 힘든 것을 내색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영원한 잠에 들고 14년이 흘렀을 때, 어머니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너희 아빠도 어린 자식들 두고 가는 게 미안하다며 많이 우셨어.”
지금도 아버지의 눈물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강인하고 단단한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가 타인 옆에서 울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조문객의 발길이 끊기고,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홀로 바깥으로 나가 허공을 멍하니 응시했다.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가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다시는 해볼 수 없는 추억이 됐다. 그때 먹먹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됐다. 후회와 분노 그리고 자조와 반추를 거듭하며 소리 없는 슬픔을 왕창 쏟아냈다.
…
《나의 사전연명의향서》를 읽으며 오래간만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부분적으로 소실됐던 기억이 생생하게 재생됐고, 조금이나마 그 심정이 느껴졌다. 죽음으로 향하는 공포와 동시에 아이와 함께 세상을 관찰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상상 이상으로 무서웠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포기하고 싶고, 세상을 원망하진 않았을까. 개인의 인생은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 있지만, 고통스럽기도 하다. 먹방 유튜버의 음미보다 직접 먹는 게 훨씬 생생하고, 타인의 죽음보다 작은 바늘에 찔린 내 손가락이 훨씬 아프다.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고, 내가 죽으면 세상도 끝난다. 그렇기에 사는 것도, 사람답게 죽는 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살을 종용하는 것은 아니다.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인간이 스스로 연명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들은 대체로 조금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의미 없는 연명을 이어간다. 물론, 스스로 병원에서 끝까지 버티고 싶다면 그것도 존중한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환자실 너머 무지개 병동(1인 임종실)에 다다르면 보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런 치료, 저런 치료, 이 약품, 저 약품의 비용은 남은 이들의 미래를 앗아간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매번 방문하는 아이들은 평생 트라우마가 자리 잡는다. 나와 비슷한 유년을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조증,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여러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었다. 차라리 시골집 안온한 곳에서 우리 가족이 온전히 슬퍼할 수 있는 환경에서 마무리했다면 어땠을까.
온몸에 여러 호스를 삽입하고, 병마가 소소한 생각마저 앗아가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렇게 대미를 장식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