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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그들이 있기에..
  • 아들
  • 요 네스뵈
  • 13,320원 (10%740)
  • 2015-07-31
  • : 1,779

요 네스뵈의 작품은 이것이 처음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추운 북쪽의 나라에서 제대로 발음하기도 힘든 인물들이 활약하는 소설은 선뜻 손이 안 가게 되어 있다.  하긴 그건 이미 저자의 이름부터 그렇지만..

 

이 책의 존재를 접한 것은 다른 정보를 통해서였다.  작년에 이어 또 한 번의 대단한 폭염이 예상되는 여름의 초입 무렵, 휴가계획을 돕기 위해 사방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정보의 홍수들 중에는 여행지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여름날의 무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혀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제시하는 책들도 끼어있었다.  당연히 그런 책들의 주된 장르는 미스테리물이나 추리물.  추리물일 경우에도 보통은 심리전이 대단한 납량특집급.  이 책은 그 중 하나로 거론되었던 저서다. - 그런데 다 읽고난 지금으로서는 이 책의 장르를 뭐라고 정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드보일드 형사물이라고 하기엔 주인공이 형사도 아니고.  하지만 경찰들이 내용 전개상 주된 인물들로 나오기는 한다.   

 

"소년"이라고 지칭되며 나타난 주인공은 사실 이미 더 이상 소년의 나이는 아닌 인물이다.  하지만 저자는 대단히 흡입력이 강한 필력으로 빠른 전개를 통해 이 "소년"이 어떻게 소년일 때 이 곳으로(그러니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쏟아내간다.  일방적으로 휘몰아치는 소년의 과거는 갑작스러운 계기로 소년의 각성과 미래로 뻗어나간다.  그리고 시작된다, 소년의 연민에 찬 복수가.  알고보면 정의를 위한 복수도 아니다, 어차피 이 책에 나오는 그 어떤 인물도 정의로운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어쩌다 한 두명 있을까? 하지만 그들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아직까지 타락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 한 잔챙이거나 젊음으로 인해 아직 어둠의 제안을 받아보지 못 했을 뿐이다.  읽으면서 내내 섬뜩하게 느낀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권력의 부패.  권력과 금력의 조화로 싹튼 부패에서 피어난 어둠이 점차 그 밝음을 덮어가는 구조.  그러한 구조가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그려진 만화가 바로, 어렸을 때는 그렇게 싫어했던 배트맨의 고담시티라는 엄연한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은 인류가 권력이란 것을 만들어낸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어진 적도 앞으로도 없어질 예정이 없다는 당연하나 그렇기에 슬픈 진실.  그 진실이 이 소설의 배경에 가장 중요한 파편이기 때문이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의적 임꺽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슈퍼맨도 아니지만 적절하게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며 감춰진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소년을 따라서 같이 궁금해진다, 이 소설 내의 도시 오슬로에서는 누가 그 어둠의 싹을 틔웠고 키워가고 있는 인물들인지.  그리고 누가 그 배신자였는지를.  소년의 원래 목표는 그 자들에 대한 복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끝에 가서 발견한 어떤 진실로 소년은 그 복수의 원동력을 잃고 포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나타난 누군가가 어쩌다 보니 그 모든 복수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읽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소년의 생명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기를 그리고 小惡에 비해 大惡을 저지른 자들이 제대로 된 응징을 받을 수 있기를 - 그러니까 그에 걸맞은 고통 속에 그 죄값을 치룰 수 있기를 - 응원 중인 것을 깨달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기는 해봤어도 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그 주인공을 제3자 입장에서 응원해보는 감정은 참 오랜 만에 접해본 듯 하다.  보통은 잘 짜여진 플롯을 가진 추리물이나 미스테리물에서 느끼는 감정인데, 이 책을 읽으며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도시의 풍광이 활자를 통해 머리 속에 생생히 그려지면서 오랜 만에 그런 느낌에 빠져들어봤다.  그래서인가, 마지막의 작은 반전이라고 할까..  로빈후드마냥 끝까지 마무리를 짓고 가는 한 건의 에필로그를 읽으며, 이 주인공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부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얼핏 생각해봤다.

 

아들..  아들이기에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성장했고, 아들이기에 아버지보다 더 커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영원히 소년이며 아버지는 아들에게 영원한 보호자요 라이벌일 수 밖에 없다.  그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이 아들이 선택한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하지만 아들의 상대들이 애시당초 그런 정의로운 잣대를 들이댈 가치나 있는 자들인가 생각해보면, 이런 "아들"이 우리 사회에도 좀 존재해주면 좋겠다는 헛된 바램을 살짝 가져보게 된다.  물론 그 방법은 실생활에서 접하기에는 참 많이 과격하지만.  여하튼, 이런 폭염이 몰려오기 전에 올해의 무더위를 예상했던 그래서 이 책을 여름휴가용으로 권했던 그(들)의 선택은 옳았다고 본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일어났으니까.  자주 접하면 식상한 플롯이지만..  가끔은 읽을 만 하고 그 "가끔"이 여름이면 확실히 좋을 법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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