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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 타고 삼 만리
“모든 현전은 비동시적인 상이한 시간들의 혼합이며, 한 시대의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사실 다음에 올 뿐만 아니라 시차로 다가온다.”(p.245)

제5장 「시각 예술의 관점에서 본 李箱 詩의 혁명성」을 소실점으로 해서 벡터적 궤도의 형태를 지닌 이 책이 담아내고 있는 담론의 궤적은 압도적이다. 읽어내기가 수월하지도 않을뿐더러 읽었다고 해도 건질 수 있는 건 - 얄팍한 전공 지식을 뽐내는 피리스틴들을 포함하여 - 비선형의 곡선을 그리는 내 무지의 궤도라고 하면 지나칠까?

저자는 ‘인문학의 위기’ 담론이 팽배한 이 시대에 위기의 정체는 학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하는 사람들의 지적 태도라고 꼬집으면서, 「이미지 시대, 학문의 道」(제1장)를 설명하면서 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디지털 풍경에 대한 논의 -「전자적 가상 공간의 문화적 정체성과 디자인의 미래」(2장), 「사이버커뮤니케이션의 삶과 죽음」(3장), 「디지털 주사위 던지기:하이퍼미디어와 시각문화」(4장) -를 전개한다. 이러한 논의는 제5장 「시각 예술의 관점에서 본 李箱 詩의 혁명성」으로 모아지며 이 논문의 탄탄한 백그라운가 되어준다. 마지막 장 「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는 이제까지 논의에 대한 저자의 재발견, 이상 시의 재문맥화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부제-디지털 풍경・마음의 道‘가 말해주듯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풍경을 좀더 침착하게 바라보고 마음을 추스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리 가볍게 읽어 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절대 아니다.

“현대시의 모든 이론은 다만 「詩學」에 붙여진 정교한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 책은 이상 시에 대한 정교한 주석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지나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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