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한 날엔 어떤 옷을 입을까?』 노래가 시가 되고, 시간이 문장이 되는 순간 다섯손가락 이두헌 노래시 필사집
🔺 저자 : 이두헌
🔺 출판사 : 이은북

🎯 노래시 필사집이라는 형식은 처음이지만 , 이두헌이라는 이름이 내게 이미 음악과 기억으로 먼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울한 날엔 어떤 옷을 입을까?』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설명을 건네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시간을 조용히 펼쳐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필사를 남기게 한다.

🔖 노래로 살아온 한 사람의 시간
이 책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은, 역설적으로 ‘내용’을 찾지 않는 것이다. 대신 이 시를 쓴 사람이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1980년대, 다섯손가락의 노래들은 도시의 골목과 청춘의 그늘을 정직하게 노래했다. 화려하지 않았고, 쉽게 낙관하지도 않았다. 그 시절의 감각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이 책 속 문장들로 다시 숨을 쉰다.

🔖 우울을 해결하지 않는 질문
‘우울한 날엔 어떤 옷을 입을까?’라는 제목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질문에는 처방도, 극복도 없다. 다만 우울한 날의 나를 밀어내지 말고, 그 상태 그대로 하루를 살아보라는 태도가 담겨 있다. 이두헌의 노래시들은 언제나 그렇듯 감정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슬픔을 설명하지 않고, 고독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조용히 곁에 남아 있는 문장만이 있다.

🔖 검열 이전의 언어, 원래의 노래
이 필사집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노래의 ‘원래 언어’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층에서 본 거리’의 초판 가사, ‘풍선’의 원 가사처럼 시대의 검열로 다듬어지기 전의 문장들은 한층 더 날것에 가깝다. 그 문장들 속에는 도시의 모순, 가난한 시선, 말하지 못했던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필사라는 가장 느린 독서
필사를 하다 보면 손이 멈추는 순간들이 생기고, 그때마다 문장이 나를 붙잡는다. 펜으로 적는 동안 노래는 머릿속에서 다시 흘러나오고, 그 시절의 풍경과 지금의 내가 겹쳐진다. 필사라는 형식이 이두헌의 음악과 이렇게까지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이 오래 남는다.

📝 우울이라는 감정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없애야 할 상태가 아니라, 그날의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옷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노래로 시작해 시로 남고, 다시 손글씨로 이어지는 이두헌의 시간은 조용하지만 깊다. 빠르게 소비되는 문장들 사이에서, 이렇게 천천히 곁에 남는 책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 이 책은 우울을 밀어내지 않고 조용히 함께 걸어보고 싶은 당신에게 건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