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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진
작가는 루이 페르고. 프랑스 소설. 제목은 단추전쟁. 여러 가지로 생소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제목은 동화 같은데 페이지 수는 360여쪽에, 빽빽하게 작은 글자다. 사실 필자는 프랑스 소설을 좋아라 하는 편인데다 제목이나, 표지도 맘에 들어서 얼른 집어들었으나, 이 '단추전쟁'이 과연 한국 땅에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까 심히 염려가 된다. 아이들을 타깃으로 하기엔 두껍고, 어른들을 타깃으로 하기엔 그들의 수준에 미치지 않는 유치한 제목 아닌가. 게다가 단추전쟁이라 쓰인 빨간 제목 위엔 꼬맹이들이 어설프게 깎은 나무 막대기를 꼬나 쥐고 웃으며 서있는 그림까지 박혀있음이야. 어른들이란 다들 옆구리에 끼고 다닐 책으로 누구에게나 자랑스레 표지를 보여주면 '오옷, 그거 어렵지 않나요? 책 좀 읽으시나봅니다.'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가.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뇌가 제목부터 팍팍 풍겨 나오면 더욱 좋고.

까놓고 말하자면 단추전쟁은 롱쥬베른느와 벨랑이라는 작은 두 마을의 어린 아이들(대략 8세에서 12세정도)의 전쟁이야기이다. 거창하게 전쟁이라 표현했으나, 당연히 사상자도 없으며, 부상이래 봐야 머리가 좀 깨지고, 엉덩이를 맞아 피가 좀 나는 정도이다. 아니다. 가장 중요한 단추! 그래, 포로가 된 아이는 옷의 단추란 단추는 모두 빼앗겨버린다. 그리하여 훗날 사람들이 이 어린 영웅들의 전쟁을 단추전쟁으로 일컬었으니. 더 이상의 줄거리는 직접 읽어보시고.

주인공들은 엉망진창인 맞춤법과 속어, 비어를 구사한다. 처음 전쟁을 일으킨 계기인 벨랑 아이들의 욕은 '물렁좆' 이었으며, 이 말이 뜻하는 바를 한참 고민하던 롱쥬베른느 아이들의 답장은 벨랑마을의 성당 문에 '벨랑 놈드른 모두 거시기 터리나 글쩌기고 인는 놈드리다!' 라고 쓴 것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소설이라고 해서 굳이 아이들이 어려운 단어들을 제멋대로 발음하고, 맞춤법을 틀릴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무언가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좀 더 현실과 가깝게 쓰기 위함도 있었을 테고, 좀 더 유머러스한 표현을 위하여 그랬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아이들이 기존세대의 어른들처럼 위선적이고 체면만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들은 사물의 본질을 내다보았지 그것을 조금 더 품위 있게 표현하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자신의 명예가 짓밟히는 것도 참지 못했다. 정녕 아이다움이다. 틀린 맞춤법이라는 기교 한가지로 이렇게 여러 가지 장점들을 끌어낼 수 있다니, 찬탄해 마지않는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전하고 독일에 대한 복수심이 높아지던 제 3공화정이다. 작품에서도 '독일 놈 같은 놈'은 최고의 욕에 속한다. 또 1905년 국가가 교육시스템을 장악하게 된 이후이며 당시 프랑스사회에서는 종교가 삶을 장악하고 있었다. 롱쥬베른느의 주민들은 정치적 입장은 공화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당의 종소리에 맞추어 삶을 살아간다. 작가는 작품의 곳곳에서 까마귀를 불길한 징조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 까마귀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독재적으로 군림하고 있는 카톨릭이다.

또한 작가는 시몽선생이나, 아이들을 항상 매로만 다스리며 대화를 단절시킨 부모들 역시 강하게 비판하였다. 곳곳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가 등장하며, 이는 평범한 일상화로 그려지나 아이들이 배신자를 상대로 보여준 폭력적인 처벌로 하여금 폭력의 도미노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 결과는 부모에게 매를 맞은 아이들은 거짓맹세를 하고 지키지 않으며, 처벌받은 배신자는 어른들에게 사실을 고해바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배신자의 부모에게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이들에게 더욱 잔인하다가, 손해배상문제가 해결되자 눈에 띄게 너그러워진다. 작품의 마지막 줄 '우리도 어른이 되면, 부모 부모들처럼 그렇게 멍청해질까?' 역시 이런 짐작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책을 고르고 있는 필자를 포함한 어른들 역시 본질을 보지 않고 위선적이지 않은지 생각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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