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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진
겐은 즐겁게 사는 수험생이다. 겐은 예쁜 소녀를 따라다니고,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고, 주위 사람들을 마음껏 무시한다. 친구 이와세의 '내가 싫어졌다.'는 고백에 겐은 이와세를 어두운 사람, 타인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이므로 농담도 통하지 않고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그런 생각은 마음속에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결코 입밖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것이다. 겐은 결코 완벽한 녀석이 아니다. 그는 이름만 들어본 감독들과, 외국 가수들과, 고전에 통달한 척 거짓으로 타인을 대했다. 그는 자기 것이 아닌 레코드로 레이디 제인을 꼬시려들었고, 그녀가 버진이라는 것에 기뻐하는 정말 평범한 녀석이었다. 자신도 잘 알지 못하면서 상대방이 모른다고 아는 척 하는 비겁한 면도 있었으며, 가장 친한 친구에게 위험을 떠넘기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 겐은 소설이 시작되면서 끝나는 순간까지 진지한 적이 거의 없다. 17살 청소년으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유치한 진지함이 없다. 겉멋만 들어서 사람 사귐에도 깊이 따위는 없으며, 남자를 무시하고, 여자는 외모로만 판단한다.

그러나 겐은 이와세의 '내가 싫어졌다.'는 말에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담임 마츠나가를 존경하기 시작한 녀석이다. 레이디 제인의 영화 평을 들으며 그는'<냉혈>의 세계가 평화로운 생활과 무척 가까운 곳에 잠복되어 있고-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 는 생각을 해낸다. 또 같은 중학교를 나온 헤세를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창녀가 되어버린 현실을 잊지 않는다. 그는 작중화자로서는 거의 진지함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진지한 내면을 소유한 녀석이었던 것이다.

자- 이 정도라면 성장소설을 끌어나갈 훌륭한 주인공이 아닌가.즐거움도 알고 있으며, 고뇌하는 내면의 소유자이다. 그가 툭툭 뱉어내는 편견으로 가득한 말들과, 도를 넘어서는 예의 없음과, 가벼움. 거기에 사실은 생각도 해낸다는 점을 플러스하면 성장해가고 있는 17세의 모습으로 전혀 무리가 없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이 겐이 가진 여러 부조리한 모습까지 희극화 시킨 소설이라면 나는 전혀 불평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인공이 완벽한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점은 글의 후기에 있다. 류는 자신의 10대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겐을 찬양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겐의 편견과,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한 타인을 거부하며 비난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따져보면 겐이 주장하던 '학교며, 제도, 정치, 기성세대, 모범생들이 자신들을 가축으로 만들어 버리고, 획일화시킨다.'는 말처럼, 겐도 그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닌가. 겐은 타인들이 모두를 획일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에는 분노하면서 자신은 당당하게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이다.' 라고 자신의 주장이 진리라고 하고 있잖은가. 게다가 자신처럼 살면 모두들 즐거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실은 겐이 별로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생각할 줄 아는 겐이, 자신이 싫다고도 느껴보았고 미군에게 몸을 파는 중학교동창을 기억하지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면서(남의 에너지를 빼앗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나 아는척 하고 떠들어대지만 사실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함을 고백하지도 못하며 자신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는 것이 사실인가? 아픔과 상처를 숨기고 있다면 그것을 진정 즐거움이라고 할 수는 있는가? 게다가 그가 '철저하게 나쁘게 쓴' 말잘듣는 학생들(교문의 페인트를 지우며 눈물을 흘린)은 왜 즐겁지 못하겠는가. 겐이 말했듯, 그들은 무서운 자들이다. 게다가 그렇게 확신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자들은 확신하는 대상이 옳고 그름을 떠나 즐겁다. 이제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즐거움'이 단지 '즐거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나가면 이것이야말로 꿈보다 해몽이겠고…… 나머지는 지면관계상-_-; 다른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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