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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지식과감성>에서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서 처음 만난 책이다.
예쁜 표지에 예쁜 책 제목이 시선을 잡아끌더니 책 소개 글을 읽는데 '아! 이건 내가 좋아하는류의 책이잖아!' 싶어 신청했다.
일상을 소재로 한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일상을 소재로 한 글을 쓰고 싶은 나로서는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었다.
'기억과 기록이 만난 에세이'라니! 어떤 내용일까?
거기다 왜 책 제목은 '달나라로 간 소신'일까?
두 딸의 아빠이자 오랜 시간 신문기자로 활동한 이낙진 작가님은 1968년생이다.
우리 엄마와 비슷한 연배라 그런지 외삼촌의 글처럼 포근하게 다가왔다.
격동의 80년대 학보사 학생기자를 거쳐 신문기자, 지금은 <한국교육신문>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한 줄 평 : '가족'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깊은 시선을 지닌 책이다.
책 제목이 '달나라로 간 소신'인 이유
2007년 '소신에 대한 소신'이라는 교육칼럼집을 준비하던 저자는 고향집에서 화분 받침으로 전락해 버린 족보를 발견한다.
2,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족보를 두 딸들에게 읽기 쉽게 하려고 살을 붙이고, 이야기를 만들어 정리를 한다.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 서랍 속에서 USB를 발견하고 '소신' 파일을 열어보게 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글을 주변에서 "교육칼럼보다 재미있다", "책으로 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소신에 대한 소신'이라는 교육칼럼 대신 전혀 다른 에세이를 내게 되어 '달나라로 간 소신'이라는 책 제목이 탄생하게 되었다.
'기억과 기록이 만난 에세이'
이 책의 구성이 특이하다.
15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고 한 편 마다 10년차의 세월이 존재한다.
2007년 쓴 글에, 2018년 덧붙이는 글로 이루어져 있다.
차 안에서 끝말잇기를 하던 어린 두 딸들은 대학생, 고등학생이 되었고
긴 연휴동안 재밌게 읽었던 소설 《남한산성》은 영화 <남한산성>으로 개봉했으며
한 해 아래 학보사 후배의 딸이 시집을 가게 되어 결혼식장서 오랜만에 선후배가 모이는가 하면
잠실 롯데호텔 커피숍에서 소개팅하여 한눈에 반한 새내기 교사는 지금의 아내 '이선생'이 되어 있다.
moderato(보통 빠르기) , retardano(점점 느리게), a tempo(본래의 빠르기로) 음악을 표현하는 말로
목차가 구성 된 것도 독특하다.
음악에서 속도를 나타내는 것을 인생의 시기에 비유한 듯 하다.
안정된 시기, 천천히 기억하고 싶은 시기, 현재로 돌아와 살고 있는 시기.
나에겐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지금이 retardano(점점 느리게), 천천히 기억하고 싶은 시기이다.
◆ 책 속 글귀
p70
한 푼도 안 쓰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택시 탈 일 생겨도 버스 타고, 소갈비 대신 삼겹살을 먹어야 한다. 아이들 옷은 주로 얻어 입히고 또 물려 입혀야 한다. 백화점은 멀리하고 할인매장을 가끔 가야 한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진 이 선생이나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사치하지 않고, 낭비하지 않고, 헛되이 쓰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얼마나 고마운가. 이 선생의 심성이 그러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경제적 여유 대신 마음 편한 행복을 주겠다는 다짐도 무능한 가장의 변명처럼 미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p80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며 위로하듯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첫 딸을 '삶의 밑천'이라고 믿는다.
p110
나는 내려갈 때마다 할머니에게 5만 원의 용돈을 드렸다. 교회에서 여행을 간다고 하거나 다른 무슨 일이라도 있다고 하면 더 드릴 때도 있었다. 사탕이나 과자도 한 두 봉지 사서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적다면 적은 액수지만 특별히 무엇을 살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할머니에게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일 헌금하는 데 옹색하지 않도록 해드린 것이다. 심방예배를 집에서 드리는 날이면 그 용돈으로 대접할 다과를 준비했다고 하며 기뻐하셨다. 교우들이 손자 덕분에 잘 먹고 간다고 하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에게 3대 독자 귀한 손자였지만 생각만큼 사랑을 받지 못했다. 할머니는 나보다 누나를 끔찍이 아끼셨다. 원주로 나와 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초등학교에 다닐 때 누나에게는 가끔 100원짜리 동전이라도 주었지만 내게는 그러지 않으셨다. 누나랑 싸움이 나도 항상 나를 나무라셨다. 그럴 때면 "왜 나만 미워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한 적도 많이 있었다.
p178
꿈꾸던 세상에 꿈은 없고, 바라던 세상은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버틴 것은 내게 주어진 가족보다 내가 만든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식구들이 살아야 하기에 집이 있어야 했고, 그 식구들이 살아야 했기에 감춰진 용기를 드러낼 엄두가 없었다.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한 미련한 소신을 아직까지 부여잡고 있는 것 또한 그런 이유일 것이다. 86세대는 그런가보다.
p182
그날부터 열병이 시작됐다. 첫 모습에서 바로 이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내 나이 스물여덟. 연애란 모름지기 밀고 당김이 있어야 할 텐데 만나자마자 이 선생이 마음속에 쏙 들어와 버렸으니 당기기는 하되 밀어낼 수는 없었다. 그전에도 몇번의 소개팅 경험은 있었으나 이렇게 마음이 흔들려 본 적은 없다. 매일매일 각인된 첫 모습이 떠올라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하든 약속을 잡아 만나고, 돌아서면 또 보고 싶어졌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책을 읽으면서 가족 생각이 안날 수가 없었다.
나의 유년시절, 대학생활, 연애할 때,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현재까지의 시간을 아울러 생각해보게 된다.
《달나라로 간 소신》은 '가족'을 바탕에 둔 글이다.
저자가 유년시절 기억하는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고모의 모습들.
아내와 연애할 때, 아빠가 되어 두 딸을 키우며 느끼는 감정들.
학보사 학생기자 시절을 거쳐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모두 일상을 기록한 글이고 그것이 역사로 기록되어 《달나라로 간 소신》이라는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부모님이 살아계신 동안 어떤 효를 행할 수 있을까?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이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란 생각을 항상 하게 해주었다.
그 사랑과 믿음 덕분에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란 꿈을 처음으로 꾸게 됐다.
남동생보다 나를 더 예뻐하시던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