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되면 알약 하나만 먹어도 배부른 시대가 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2020년이 되어도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밥을 해야 한다.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으니 이제 점심까지 준비를 해야 한다. 슬슬 데워 먹기만 하면 되는 음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한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을 달고 살지만 먹는 일에 그리 공을 들이지 않고 맛있고 배부르게 먹고 싶다. 요리가 즐거운 사람도 있는데 나는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다.
<스님과의 브런치>는 독특한 책이다. 사찰요리의 매력에 빠진 회사원이 사찰음식을 배우며 스님과 나눈 이야기란다. 물론 책에는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 정갈한 사찰음식 사진이 눈길을 끌지만 이 책의 핵심은 아름다운 결과물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다.
한글을 막 깨친 다섯 살 무렵부터 요리책을 탐닉했다는 저자는 세상을 향해 있는 모든 감각을 닫고 요리책을 읽고 요리를 함으로써 힘든 세상에서 도피하려 했다 한다. 그러다 사찰음식을 배우고 난 후 요리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세상을 넓혀가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사찰음식에는 ‘왜’가 있다. “김밥 위에 깨를 왜 뿌릴까요?”, “호박과 당근 중 어느 것을 먼저 볶을까요?”, “이럴 때는 조청을 써야 할까요, 물엿을 써야 할까요?”...... 한번 수업을 듣고 나면 머릿속에 온통 왜, 왜, 왜, 왜 메아리가 울릴 정도였다고.
어느 날, 완성된 요리를 한 숟갈 떠먹고는 “스님, 맛있어요!” 하고 엄지를 치켜들었더니, 스님이 “음식에는 맛있다와 맛없다가 없습니다” 하고 답하셨다.
스님은 음식은 ‘몸을 지탱하는 약’이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음식을 만들 때 가장 맨 앞에 두는 게 맛, 그러니까 혀의 즐거움이 아니라 몸의 편안함이라면 자연히 ‘왜’를 묻고 따질 수밖에 없다. 이 재료는 왜 쓰고 어떠한 성질이 있고 어떤 양념과 궁합이 맞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내 몸에 필요한 요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찰요리에 있고 또 없는 것> 중에서
사찰요리는 맛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재료에 대해 알고 그 성질에 맞게 다듬고 조리해서 내 몸을 위해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쩌면 사찰요리를 하는 것은 인생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성공한 인생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한 번뿐인 인생을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채워가는 것.
처음 <스님의 브런치>를 펼쳤을 때는 사찰음식을 소개하는 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사찰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오신채를 금하는 사찰요리를 통해 내 안에 들끓는 것이 열정이 아닌 욕심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튀김을 만들며 인생에 쫄지 말자는 자세도 배우고, 연하게 끓인 된장국에서 먹는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태도를 배우고, 보기에 예쁜 음식보다 그 안에 사랑을 담아야 한다는 것도 배우고... 저자는 요리를 하며 배운 삶의 깨달음을 하나씩 맛있게 꺼내 놓는다.
책을 읽고 나니 배만 채우면 된다고 대충 후다닥 만들어 먹고, 귀찮다고 온갖 조미료와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모르는 혀에 자극적인 음식들로 배를 채웠던 날들이 미안해진다. 그런 음식을 먹어준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 더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찰요리 별거 없어요. 시시해요. 이걸 왜 돈 주고 배우나 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이걸 돈 주고 배웁니다. 수업시간에 요리 기술 배우는 게 아니에요. 너무 쉽고 간단해요. 사찰요리는 레시피를 배우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시시한 게 삶에서 중요하다는 지혜를 배우는 거예요.” <정답은 냉장고 제일 안쪽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