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잡학서재
  • 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 13,500원 (10%750)
  • 2015-09-23
  • : 35,158

개인으로 바로 서기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문학동네, 2015. 9.

 

신간에 뜨자마자 오랫동안 기억했던 책이다. 내가 읽는 『개인주의자 선언』이 벌써 5쇄라니, 독자의 반응이 대단하다. 사람들도 나처럼 ‘개인주의 선언’이 하고 싶은 모양이다. 조직에서 버티기로 마모되면서 살아야 하는 현실의 갑갑함이 크다. ‘나’는 작아지고, 사회적 지위와 역할의 무게는 점점 커져간다.

 

‘세대’ 보다는 ‘시대’의 범주로 문제를 접근하는 문유석 판사의 접근이 훨씬 설득력 있게 나가온다. 장하성 교수가 쓴 신간 『왜 분노해야 하는가』(헤이북스, 2015. 12.)는 이십대의 역할을 강조한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아젠다를 세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법은 쉽지만, 한 세대를 하나의 집단으로 이해하는 장하성 교수의 태도가 몹시 불편하다. 세대로 묶으면 너무 많은 개개인의 편차가 희석되어 버린다.

 

인생에는 숱한 역설이 존재한다. 그것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든가, 세상이 비관적이기 때문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든가,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등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우리는 죽는 걸 알면서도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므로. ‘그러니까’, ‘어차피’가 아니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

 

저자 문유석의 글, 많은 부분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찌꺼기처럼 붙어 있는 잉여의 불편함이란 그가 너무도 당당하고 위악스럽게, ‘개인의 행복 추구.’,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직업.’을 말하기 때문이다. (서평을 쓰는 나의 비도덕성을 비난한다면, 당연히 할 말은 없다.)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사람은 위악을 떨 수 있지만, 자신이 악하다고 믿는 사람은 위선을 부릴 수밖에 없다. 문유석의 위악은 조금 조심스럽다. 반듯한 사람, 건강한 소시민, 그러나 딱 거기까지.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팔려는 것도 아니고, 더더욱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리라고 하니, 비난해야 할 까닭도 없다.

 

지난 주 인터뷰에서, 앵커 손석희는 배우 황정민에게 마지막으로 어려운 질문을 하겠다고 했다. 관객 천만을 달성한 ‘국제시장’과 ‘제보자들’ 중 어느 쪽에 마음이 더 기우냐는 것이었는데, 대답은 아주 쉬웠다. 고민할 것도 없이, ‘국제시장’의 아버지가 자신의 이상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질문에 쉬운 답이라니. 딱 거기까지가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한계라는 걸 알겠더라. 거기에서 나는 찝찝한 잉여가 남는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279쪽).”는 저자의 말에 이렇게 댓글을 달고 싶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살려하기에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