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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발로통(Félix Vallotton, 1865~1925)은 주로 화가이자 판화가로 기억된다. 목판화에 신랄한 위트를 담아내고, 누드와 실내 풍경을 불안하리만큼 차갑고 고요하게 그려낸 스위스 출신의 나비파 화가. 그가 소설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며, 『유해한 남자』는 그 숨겨진 재능을 증명하는 가장 빛나는 작품이다.


발로통은 1907년 1월부터 1908년 1월 사이에 이 소설을 집필했다. 1909년 출판사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1925년 임종 직전 작가 앙드레 테리브에게 원고를 맡기며 출판될 수 있기를 바랐다. 출판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작은 비극이다. 진지한 문학적 힘을 지닌 작품이 생전에 거절당하고,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독자들에게 닿을 수 있었으니.


소설이 1927년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연재되며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테리브는 이 작품을 "자전적 요소들이 감동적이고 끔찍한 허구와 뒤섞인 소설"이라 묘사했다. "그의 옛 어두운 유머의 판화들처럼, 눈에는 환각적이고 영혼에는 황폐한 그림들처럼, 세계에 대한 자연주의적 시각이 드러나 있다". 


범죄 현장 속의 고백


​소설의 구조는 우아하면서도 불길하다. 스물여덟 살의 젊은 화가 자크 베르디에는 자택에서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쏘았다. 조사를 위해 파견된 경감은 현장에서 '하나의 사랑(Un amour)'이라는 제목의 소설 원고를 발견한다. 1인칭으로 쓰인 이 원고는 작가가 살면서 유발했거나 유발한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죽음들을 서술하며, 그는 점차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이끄는 어두운 운명을 짊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이 불길한 저주에 대한 책임감에 시달린 끝에 자살 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학자들은 이 소설이 얀 포토츠키의 유명한 문학적 장치로부터 이어지는 '발견된 원고'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이중 액자 구조가 탄생한다. 독자는 주인공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삶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서스펜스가 아니라, 어떻게 그곳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느리고 서늘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자크 베르디에: 악의 안티히어로


주인공은 함께하기 편한 인물이 아니다. 자크 베르디에는 그다지 공감하기 어려운 성격의 소유자다. 끔찍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고 비관적이며 변덕스럽고 우유부단하다. 어린 시절 그의 서투름은 두세 차례의 치명적인 사고와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발로통은 단순히 괴물을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무언가를 해낸다. 자크 베르디에는 악의 안티히어로다. 악을 집요하게 추구하던 이전 세기의 루시퍼적 인물들과 달리, 발로통은 악이 그림자나 향기처럼 따라다니지만 결코 그것을 원하지 않는 인물을 창조했다. 베르디에는 대체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는 파리로 상경한 지방 청년으로, 거의 우연히 미술사가로서의 소명을 발견한다. 그의 삶은 창녀촌, 살롱, 카페, 편집실이라는 대도시의 예측 가능한 풍경 속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베르디에는 자신이 무언가 심각한 것을 숨기고 있음을 안다. 악은 그의 영구적인 손님이며, 그의 손을 통해 그를 찾아오는 다양한 존재들에게 전달된다. 


이것이 이 소설을 단순한 자극적 이야기가 아닌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작품으로 만드는 지점이다. 주체성 없는 죄책감, 의도 없는 해악. 선택하지 않았지만 짊어진 저주에 대해 인간은 과연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발로통이 탁월하게 구사하는 역설은, 베르디에의 불길한 삶이 베르디에 자신과 그의 고백을 듣는 독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외부와 내부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내며, 서사에 음울한 익살의 진동을 부여한다. 외부에서 보면 베르디에는 평범한 파리 지식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부에서 보면 그는 운명의 올가미에 천천히 목이 조여들고 있다.


산문 속의 화가의 눈


『유해한 남자』를 같은 시대의 많은 소설들과 구별 짓는 것은 관찰의 질이다. 발로통의 시각 예술가로서의 훈련과 실천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그 품질.


이 소설은 비평가들에 의해 "유사 자전적"이라 묘사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파멸을 예고하는, 그 시선 자체가 죽이는 것 같은 영리한 젊은이의 이야기. 한 장면에서 주인공은 여성 모델이 실수로 난로로 넘어지는 데 가담(?!)하고, 그 후 그녀의 가슴 하나는 "형체도 없이 부어오른 덩어리, 일종의 점성 있는 용암"으로 변한다는 묘사가 등장한다. 이 대목은 발로통의 묘사적 정밀함을 잘 보여준다. 화가가 임상적 거리감으로 장면을 그려내듯, 외면하기를 거부하고, 위안을 거부한다.


화가와 작가가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 속에서 하나로 합쳐지고, 언어적 압축의 강렬함이 돋보이는 이 언어로 쓰인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등장하는 공포가 평범함과 나란히 놓이다가 결국 독자에게 주먹처럼 다가온다. 


학자들은 또한 발로통이 이미지와 텍스트 양쪽에서 시각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관계를 위한 독특한 시각 언어를 발전시켰다고 지적한다. 그의 예술적 명성을 처음 확립시킨 파리 군중 장면들은 구경꾼이라는 현대적 유형의 중요성을 증명하며, 이는 도시적 관음의 매력과 복잡한 윤리를 나타내는 형상이다.  즉, 바라보는 것의 윤리 —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자의 태도 — 가 그의 판화와 소설 모두를 관통하고 있다.


블랙 유머와 균형 잡힌 어조


이 책의 진정한 놀라움 중 하나는 그 어조다. 자살, 우발적 살인, 성병, 강박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결코 끝없이 어두운 독서 경험이 아니다.


문체는 경쾌하고 부드러운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으며, 이 젊은이가 주변에 뿌리는 불행들을 읽다 보면 그의 순진함이 오히려 애처롭게 느껴져 결국 미소 짓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이들이 확실한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라고 믿으며 살아왔고, 당연히 그의 행동은 이 치명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독자들은 발로통의 시각 작품을 통해 그를 알게 된 이후 그의 산문 속 재치에 놀라곤 한다. 한 독자는 이전에는 그의 회화와 판화만 알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가 천재임을 확신하게 됐다며, 신랄하고 냉소적인 문체와 "블랙 유머로 가득 찬" 서사가 첫 페이지부터 사로잡는다고 평했다.


자전과 허구 사이


발로통은 단순히 자전적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적 어려움이 실행 가능한 상상의 재료를 제공할 수 있음을 냉정하고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예술가다.  파리를 항해하며 사랑, 미술 비평,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방인이라는 감각과 씨름하는 젊은 예술가인 주인공과 발로통 자신의 전기 사이의 연결고리는 분명하지만, 결코 조잡하지 않다. 소설은 경험을 단순히 옮겨 적지 않고, 아이러니와 형식적 기교를 통해 그것을 변환시킨다.


한 학술적 분석은 발로통의 소설들이 다양한 형식적, 도상학적, 문학적 관습을 '보호막'으로 사용하여 인간 본성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표현하면서도 스스로를 거리를 두고 보호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발견된 원고라는 구조는 바로 이 목적에 봉사한다. 고백을 죽은 자의 원고 안에 놓음으로써, 발로통은 친밀함과 거리감 모두를 성취한다. 독자는 비밀을 듣기 위해 가까이 몸을 기울이지만, 말하는 자는 이미 사라져 있다.


『유해한 남자』는 짧고 기묘하며 깊이 완성된 소설로, 발로통의 그림과 판화와 나란히 읽혀야 마땅한 작품이다. 함께 읽을 때 하나의 일관된 예술적 비전이 드러난다. 불안한 가정의 풍경, 폭력과 욕망을 향한 차가운 시선, 감상을 거부하는 유머. 이 작품은 누아르 소설, 사실주의 서사, 자전적 이야기 사이를 오가며, 사적인 불안이 거대한 사회적 불안과 공명하고, 비관적 인식들이 놀라운 서술의 힘으로 전달된다. 


발로통이라는 화가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 이 소설은 붓질 뒤에 숨겨진 인간을 밝혀준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접하는 독자에게도 이 작품은 충분히 독자적인 매력을 품고 있다. 죄책감, 운명, 그리고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의 대가 — 혹은 너무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 자체의 대가 — 에 대한, 간결하고 신랄하게 아이러니컬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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