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30 AM
시사 토론회를 보다가 깜빡 잠들었었지.
"저녁엔 코메디를 봐야해요. 웃다가 잠들면 정신건강에 최고라네요." 불면으로 시달리는 내게
그녀가 해준 말이다.
어제는 어땠던가. 우리나라 최고 권력집단들의 우격다짐들.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상황.
굳이 말하자면 코메디에 가까웠겠다. 정치가 코메디가 되는 시대.
어쨌든 시간은 새벽 두시를 향해 가고 있다.
그렇게나 깊게 자버렸나. 채 두시간 남짓의 수면이지만 전혀 피로하지가 않았다.
예의 복통이 배꼽아래에서 자글거렸지만 기분은 상쾌함에 가까웠다. 가깝다라는 클리어하지 않은
표현을 한 것은 약간의 멍한기운이 서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놀랄만한 고요.
소리들이 몽땅 집단휴가라도 떠나 버린듯한 고요 탓이리라.
[몽롱함]이라는 위스키가 두어방울 떨어뜨려진 커피를 마시는 그런 상쾌함.
초저녁부터 시작한 술이 서서히 깨어가고 음주단속반이 자러 들어간 새벽 즈음에,
비에 젖은 올림픽대로를 시속 180킬로로 달리며 들이키는 공기를 닮은 상쾌함.
일탈로 반드르르 치장된 자유.
얼기설기 얽혀진 삶이라는 그물이 사라진 시간..이상한 나라의 폴이라는 만화영화를 기억하는지.
미나와 버섯돌이,대마왕 그리고 요요..아. 그 못난 곰인형이 삐삐라 불렸던가?
모두들 멈추어 있고 나만이 깨어있다는 즐거운 고독.
나는 이 모든 것들의 힘을 빌어 이 글을 쓰고있다. 엄청난 오바(over)된 감정일지언정
지금은 over-night이다.
버릇처럼 오디오를 켜고 요시모토 바나나 作 [멜랑코리아]의 마지막 40여페이지를 읽었다.
희한하다. 자다가 깼지만 밤도 새벽도 아닌 그런 시간의 책읽음. 모든 구절들이 머리속에 팍팍 꽂혀
들어온다. 아침엔 절대로 살려낼수 없는 그런 기억.
망막에 맺힌 활자들이 뇌주름속에서 곡예를 한다. 제각각 웃고 마시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흡입력이
좋은만큼 많은 분량을 읽어내지는 못한다. 하느님이 모든걸 주진 않는 법이다.
몇 구절 간추려 본다. ( )은 나의 감상이다.
o 알아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암..그렇구 말구, 끄덕끄덕)
o 오늘 하루는 덤으로 얻은 꿈, 하늘에 뜬 詩인 것이다. (내게도 이런 하루를 주소서)
o 강렬한 헤어짐의 예감...각자의 길이 저렇게 구름에서 쏟아지는 금빛줄기처럼 달콤하고 멀고
곧바르게 갈라져 있다. (이별이 이렇게 희망차다면 얼마나 좋을까 )
o 언젠가 그녀가 다른 누구와 지내게 된다면 그녀석이 볼 그사람의 치맛자락에조차
나는 마음 아파할 것입니다. 그녀는 꽃이고 희망입니다.빛이고 가장 약한 것이며
또한 가장 강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곧 누군가의 것이 되겠죠. 모든것이.
그 잠든 얼굴도,뜨거운 손바닥도. (우훗..이런 대단한 묘사력!)
또..또,재즈가 있다.
빌 에반스와 짐홀이 함께한 Undercurrent. 1963년작. 나보다도 오래 살아온 音들.
난 피아노와 기타를 구분할 수 없었다. 곡과 곡사이의 인터벌도 느낄수 없었다.
다만 총 10곡, 40여분정도의 긴 흐름을 따라 몸을 천천히 흔들 뿐이었다.
두 대가가 고개숙여 엮어내는 잔잔한 대화의 여운속에서.
불면은 천혜다. 불면의 아이들에게 시간은 늘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