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유행(?)을 타는 듯한 제목의 책을 읽는 것은 나의 취향에 한발 벗어나 있다.
특히, 저자의 후반 몇 chapter는 스티브 잡스의 유명세를 업지 않았나 하는 약간의 의심이 들었다.(저자도 꽤 유명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접어두고 이 책을 통독하게 된건, 스티브 잡스라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우연히 보게된 그의 14분짜리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2005년)축사 동영상 때문이었다.
평소 존경하는 분이 보내주신 메일에 포함된 그 동영상이 몇 달동안 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잠자다가 어느날 문득 모니터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졸업 가운을 입고 단상에 오른 그는 불과 십여초만에 내 눈과 귀를 붙잡고 14분 내내 나의 영혼까지 사로잡아 버렸다.
스티브 잡스, 상기 책에서도 강조하듯, 그는 프리젠테이션의 귀재다 (매년 맥월드 컨퍼런스로 모이는 수많은 매킨토시 매니아들이 그의 연설에 매료된다. 그들 앞에서 그는 항상 검은색 터틀넥 셔츠와 청바지다.)
졸업식사 내내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하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확신에 차서 이야기한다. 여느 축사처럼, 내외빈에 대한 인사도, 그 흔한 날씨 이야기도 없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일에 대한 열정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그는 본인이 설립한 애플에서 해고 됐을 때 [도망치고 싶었다]고 한다. 숨도 못쉴 정도로 무력했다고 한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난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한 자신에게서 아직도 [일에 대한 사랑]이 살아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애플에서 짤렸을 때, 비로소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해방되어 자유와 창의성이라는 세계와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이 책은 스티브 잡스의 이러한 성공과 실패, 그리고 재기, 즉 폐쇄성과 독단에 의한 몰락과 픽사의 성공을 기반으로 애플의 구원투수로 복귀, 그리고 아이포드를 필두로 한 연속적인 성공 스토리를 흥미롭게 그려주고 그 원인을 분석하였다 – 저자는 그 원인으로 열정/인재발굴/집중력 등을 꼽고 이 모든 것을 창조 카리스마…라고 풀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속을 지배한 것은 ‘거꾸로 생각하기(발상의 전환?)’라는 센텐스였다. 돌아보매, 스티브 잡스는 한번도 주류를 따른 적이 없다. 맥을 만들때도 기존 컴퓨터에 반기를 들었고 2D 애니메이션이 주류일 때, 3D 애니메이션으로 과감한 승부를 걸었고, 애플 복귀후 많은 기업들이 PDA에 관심이 모아졌을 때 그는 그 사업을 접어버린다.(뉴턴이라는 애플의 PDA를 기억하시는지?). 냅스터의 음악파일 공유가 치열한 법정공방후 패소했을 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료 음악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그의 창조성의 근원은 이러한 ‘역발상’에 있다. 그에게는 자신조차도 거꾸로 생각하기의 대상에 불과하였다. 많은 이들이 그가 변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도 좌뇌에서 우뇌를 결합했으며 기술위주에서 디자인과 감성을 이해하는 경영자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감히 이야기 하고 싶다. 그는 변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 그의 아웃사이더(반골) 정신은 애플을 창업했을 때 이후로 한번도 퇴색한 적이 없다. 오히려 빛을 더욱 발하고 힘을 더해서 그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몇 년뒤엔 현재의 그 자리가 아닌 또 다른 자리에서 열정을 내뿜고 있는 검은 터틀넥 셔츠의 그를 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의 스탠포드 졸업식사의 마지막 분이 생각난다. 그는 졸업생들에게 내일 죽음이라면 이 일을 할 것인가. 라고 자문하라고 한다.(사실, 그는 췌장암 선고를 받고 기적적으로 소생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가 말하길, 죽음 앞에는 모든 [두려움]이 다 떨어져 나가고 오로지 진실앞에서 벌거벗겨진 자신의 모습과 대면한다고 한다. 누구도 죽고 싶지 않지만 죽음은 피해갈 수 없는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하면서 인생을 낭비말라고 한다. 타인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라고 일갈한다. – 얼마나 멋진가!
그의 마지막 말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그리고 미련함과 함께) 을 기억하면서 마지막으로 책중의 몇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픽사에서는 애니메이터에게 예술가 보다는 배우가 될 것을 강조했다.
생생한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면 무엇보다 섬세한 감성을 표현하는
연기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나서 물건을 만들수는 없다. 그 제품이
완성될 때쯤이면 고객들은 이미 다른 새로운 제품을 찾을 것이다.
----나는 단지 문화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