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 요약 ]
여름방학식날, 자살한 급우 S의 시체를 발견하고만 9살 미치오군의 좌충우돌 사건해결기(?)
[ 문체의 느낌 ]
미치오가 주변인물과 나누는 대화들은 슈스케님의 또다른 작품 <외눈박이 원숭이>와 비슷했습니다. 귀여운 하드보일드, 인간미를 놓지 않은 블랙위트의 느낌이랄까요. 반가웠습니다.
[ 감상 ]
책을 손에 잡은 것이 하필, 교고쿠도 시리즈 정주행 직후였습니다. 일본 쇼와시대, 교고쿠도 일당들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이제 막 빠져나온 터라 처음에는 잘 읽혀지지가 않았어요.
주인공이 9살 소년이다보니 어딘가 성장소설의 느낌에다가, 앞으로의 내용도 종잡을 수 없더군요. 그러한 까닭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소년의 눈으로 S의 사라져버린 시체의 행방을 찾는 탐정물인건가? 하고 짐작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병적으로 미치오를 미워하는 엄마, 그러한 엄마의 행동에 너무나 초연한 미치오, 엄마의 행동을 못본척하기만 하는 무기력한 아빠, 이러한 가정에서 유일한 구원인 여동생 미카의 존재. 미치오의 가족 묘사를 읽고 나니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3살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미카의 언행. "저기, 이건 뭔가 이상하잖아!"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1인칭 화자인 미치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죠. 여기에, 마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개와 고양이사체 손괴사건(?)도 어떤 관련성을 암시하면서 미스터리의 한 축을 구성합니다.
[ 초반부의 주요 미스터리 ]
[S군 사망사건]
자살인가, 타살인가?
시체는 누가, 무엇때문에 가져갔는가?
시체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개와 고양이사체 손괴사건]
범인은 누구인가?
왜 기괴한 방법(입안에 비누+뒷다리 꺾기)으로 죽이는가?
여기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느닷없이 S군은 거미로 환생하여 미치오의 앞에 나타납니다. 사실, 이 환상적 장치를 받아들이는데 저항감도 꽤 컸습니다. "뭐야-"하면서 순간 책을 던질뻔 했죠. 하지만 별 수 있나요. 초중반부 대부분은 철저한 미치오의 1인칭 서술이므로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이성적인 분석을 미처 하지 못한 채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은유적인 장치'일거라고 무의식중에 납득시키면서 말이죠.
죽은 S군의 재등장으로 초반부의 미스터리는 대부분 해결이 됩니다. 그도 그럴것이, 죽은 본인의 얘기라서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죽은 후의 기억은 없으므로, 시체의 행방만이 묘연했습니다. 따라서,
[중반부의 주요 미스터리]
[S군 사망사건]
자살인가, 타살인가?
시체는 누가, 무엇때문에 가져갔는가?
시체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개와 고양이사체 손괴사건]
범인은 누구인가?
왜 기괴한 방법(입안에 비누+뒷다리 꺾기)으로 죽이는가?
가 되었습니다. 미치오 일당(미치오+미카+거미가 된 S군)은 강력한 심증을 가지고 범인을 미행하고, 그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던 중, 항상 미치오와 미카의 고민 상담을 해주고 귀여워해주던 이웃의 도코할머니가 앞서 기괴한 방법으로 죽어간 개나 고양이의 경우와 같은 수법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후반부의 주요 미스터리 ]
[S군 사망사건]
자살인가, 타살인가?
시체는 누가, 무엇때문에 가져갔는가?
시체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개와 고양이사체 손괴사건]
범인은 누구인가?
왜 기괴한 방법(입안에 비누+뒷다리 꺾기)으로 죽이는가?
[도코할머니 살해사건]
범인은 누구인가?
후반부에서는 미치오군의 기지(?)로 대부분의 미스터리는 해결됩니다. 하지만 여러차례의 반전이 거듭될수록 누가 악당인지, 누구를 믿어야하고 믿지 말아야할지 혼란스러워지고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본격미스터리물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누가 범인이고 이유는 무엇인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느낌까지 들어버립니다.
[ 뒷맛 ]
일단, 엄청난 흡입력을 가진 소설이었다고 봅니다. 잠자리에 누워 잠깐 들었던 책때문에 밤을 꼬박 새웠으니까요(단, 소설 속의 환상적 장치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뒷통수를 후려치는듯한 충격적인 반전은 없습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끊임없이 복선을 제시했다고 봅니다) 갑작스레 외면하고픈 진실과 마주하게 된 주인공의 저항도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과연...그랬던 것이구나’하는 느낌을 주는 담담한 반전이랄까요.
보통 미스터리물에서의 반전은, 악당의 실체와 그 추악한 내면의 진실을 알게됨으로써 느끼는 경악과 충격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의 반전은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색다른 유형이었으며, 이것이야 말로 본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과연, 책표지에 요란스럽게 쓰여 있는 광고문구중 하나가 제 값을 하는군요. 「분류 불가!」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고 나니, 유리병을 들여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미치오의 작은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