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4년 겨울호 (통권72호)
책담(冊談)
원더풀 랜드를 찾아서
양솔규 / 편집위원장
『원더풀랜드』/더글라스 케네디/밝은세상/2024년10월15일/19,800원
2024년 11월 5일, 트럼프의 당선이 유력해진 순간, 미국의 성소수자, 유색인종, 진보적 지식인, 예술종사자 등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2.0이 가져올 기본권의 후퇴와 종말론적 예측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현재의 글로벌 위기의 근저에는 글로벌 협력의 실패와 국제 질서의 붕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트럼프의 당선은 이러한 위기의 근원을 더 깊고, 넓게 심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라리는 최근 팟캐스트 GZERO World에 나와 이안 브리머(Ian Bremmer)와 인터뷰를 가졌는데, “우크라이나와 가자 전쟁을 포함한 현재의 위기는 인류의 협력적 초강대국이 흔들리는 순간”이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할 경우 “세계 질서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제3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먼 미래에 다시 오늘날을 되돌아볼 때 현 시점이 무시무시한 역사의 결절점임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렇기에 트럼프의 미국 대선 당선은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2024년 최고의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때는 몰랐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즈음에 한국의 대통령이 자신이 권력의 정점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엄령을 때리고 국회에 군바리들을 투입하게 될 것이라고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전대미문의 미 의회 난입 폭력사태를 일으켰는데도 그 두목이 버젓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보면, 유발 하라리가 얘기하는 ‘질서의 붕괴’와 ‘예측 불가능성’이 우리 사회에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트럼프도, 윤석열도 ‘부정선거’ 운운하며 자신과 지지자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의회에 난입했다는 공통점에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
그런 순간에 영미 대중소설의 최고봉 더글라스 케네디가 『원더풀랜드』를 들고 나왔다. 영리하게도 한국어판 소설의 초판 1쇄 인쇄일은 9월23일인 반면, 1쇄 발행일은 10월15일이다. 미국 대선의 한복판에 책을 출간해 흥행에 일조하겠다는 출판사의 상업적 계산이 영락없이 보인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누구냐. 『빅 픽처』, 『모멘트』 등으로 초 롱런하는 베스트셀러 소설가 아니던가. 이 소설가가 미국 대선을 겨냥해 새 소설을 발표한 것이다. (한국에서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을 거의 ‘전담’ 번역하고 있는 조동섭 번역가가 이번에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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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다시 보니, 띠지에 써진 홍보문구 “이 책을 읽을지 말지 망설이는 분들에게 걱정 말고 읽으십시오! 진짜 재밌습니다”(장강명 소설가)는 과장이 섞인 주관적 평가에 다름 아니라고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내가 애초부터 더글라스 케네디의 대중소설 작품에 사회과학적 통찰력을 기대한 것은 아니니 이 정도면 이 시국에 읽을만한 책은 될 거 같다.
소설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2024년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와 비슷한 성향의 ‘제럴드 콤프턴’ 후보를 내세웠고, 이후 공화당은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장악한 채, 공화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변경한다. 2027년 대법원 판사의 보수 : 진보 비율이 7 : 2가 되고, 이미 2022년에 대법원이 금지한 임신중지 수술 이후 2028년이 되면 미국의 모든 주에서 합법적 임신중지가 금지되고, 동성 결혼은 위헌 판정을 받으며, 공립학교는 기독교 수업이 허용되고, 이민 자격은 기독교도에게만 허용된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은 극우 정당이 정권을 잡았고, 중국은 선전포고도 없이 타이완을 침공한다. 2032년 대선에서 또다시 공화당 후보인 호킨스 상원의원이 당선되면서 아이를 출산하지 않은 35세 이상 여성과 ‘일반적이지 않은 가정’에 세금을 중과하는 법안을 도입한다.
한편, 2020년대 초반, 모건 채드윅은 생체 이식 ‘채드윅 칩’을 개발해 대인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을 불러 왔다. 억만장자가 된 채드윅은 가난한 계급을 위한 뉴딜 정책을 지지하면서, 현재 미국은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라고 규정한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의 텃밭인 클리블랜드에서 kkk단의 후신 ‘뉴 클랜’이 집회가 불허되자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무차별적인 총격 학살을 자행한다. 이때부터 미국 분리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모건 채드윅은 공화당 호킨스 대통령에 맞선 강력한 지도자로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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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년 미국은 결국 연방공화국과 공화국연맹으로 분리된다. 공화국연맹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바탕이 된 사회로, 12사도가 지배하면서 여성을 억압하고 공개 화형으로 죄인을 처벌한다. 한편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가 크지 않은 곳, 여성이 임신중지권과 자기 선택권을 갖는 곳,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존중하고, 사회보장과 예술을 중요시하는 곳’을 만들겠다며 연방공화국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에게 ‘채드윅 칩’이라는 생체 칩이 이식되고, 일거수일투족을 국가가 감시할 수 있는 모순적인 곳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탈을 쓴 파시즘 국가’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고,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공화국연맹이 연방공화국을 비난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미네소타 주는 유일하게 두 국가로 분리되는 운명에 처했다. 그리고 미네소타 주 가운데에 위치한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은 중립지대로 남게 되었다. 마치 냉전 시기 베를린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베를린의 체크포인트 찰리와 비슷한 검문소들이 존재한다. 소설은 이복 자매인 양국의 정보 요원들이 2045년, 중립지대에서 치열한 첩보전과 암살 작전을 수행하는 이야기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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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이 두 개로 쪼개진다는 생각에 역사적 기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1850년대 노예제를 둘러싸고 미국이 두 진영으로 나눠졌고, (남북)전쟁까지 불사했던 것이다. 아메리카 합중국은 가입 단위가 주(州) 단위로 가입할 수 있다. 서부의 캔자스와 네브래스카가 주로 승격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을 때, 두 주를 자유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노예주로 할 것인가를 두고 주민 투표를 벌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1819년 미주리 준주(準州)가 주 승격될 때 노예제로 가입할 것인가, 자유주로 가입할 것인가를 가지고 이미 격돌한 바 있다. 당시 북부 11개 자유주와 남부 11개 노예주가 있었기에 미주리의 선택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결국 ‘미주리 타협’을 통해 노예주로 하는 대신 메인 주를 분리해 자유주로 두는 타협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미주리주의 남쪽 경계선인 북위36도30분 이북은 노예제를 영원히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임시방편에 불과했고, 결국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 승격을 둘러싸고 또다시 격돌한다. 캔자스-네브래스카는 북위36도30분 북쪽이므로 자유주여야 했지만, 노예주가 되고 만다.)
이 무렵 주요 정당이던 휘그당도 찬반양론으로 분열한다. 휘그당원 중 노예제에 반대한 ‘양심적인 휘그’와 일부 민주당원이 힘을 합쳐 공화당(Republican Party)가 만들어졌다. 지금의 지리적 분포나 이념적 지형과는 상당히 다르다. 당시 공화당은 북부의 노예제 반대론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은 주로 남부의 노예제 옹호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아무튼 공화당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남부인들은 연방으로부터 탈퇴해 새로운 연합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1860년 플로리다, 미시시피, 조지아, 텍사스 등이 모여 새로운 국가인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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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도 있다. 어니스트 칼렌바크(Ernest Callenbach, 1929~2012)가 1975년에 쓴 『에코토피아』(우리나라에는 1991년 정신세계사에서 출간되었다.)이다. 베트남 전쟁 기간동안 쓰여진 에코토피아는 거의 100만 권 이상 팔려나갔다. 생태환경주의 소설로 정평이 높았다. 이 소설로 (윌리엄 모리스의 책과 더불어) 생태주의적 이상향인 ‘에코토피아’라는 새로운 개념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에코토피아(Ecotopia)는 생태학+이상향을 뜻한다. 오리건주, 워싱턴주, 북부 캘리포니아주였던 지역들이 미국 연방에서 탈퇴해 “에코토피아”를 만든다. 그 후 20년 동안 폐쇄적으로 고립되면서 에코토피아는 베일에 쌓여 있었다. <타임스 포스트>지 국제부 기자 윌리엄 웨스턴이 6주 동안 에코토피아에 취재를 가게 된다. 에코토피아라는 분리공화국의 수도는 샌프란시스코. 에코토피아는 인간과 환경이 완벽하게 조화된 생태적 이상향을 창조하고자 애쓰는 사회이다. 에코토피아에서는 재활용이 곧 생활 방식이고, 가스 구동 자동차가 전기차로 대체되며(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속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걷거나 출퇴근하지만) 자전거가 공공장소에 배치되어 마음대로 빌릴 수 있는 사회를 묘사한다. 에코토피아에서는 태양 에너지가 보편화되어 있고, 유기농 식품을 현지에서 재배하며, 석유화학 비료 대신 가공 하수를 사용하여 농작물을 재배한다. 상업용 고층 건물은 아파트로 개조되었고, 공장은 노동자들이 소유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는 지역적으로 관리되고 보편적으로 제공되며, 국민들의 주 근롯간은 20시간이다. 마리화나는 합법이며, 국가 원수는 여성이다. 과학적 상상력 뿐만 아니라 정치적 상상력, 생태적 통찰력을 보이는 소설이다. 저자인 어니스트 캘런바흐는 2012년 4월16일 캘리포니아 버클리 자택에서 향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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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적이고, 생태적인 에코토피아는 앞서 본 『원더풀랜드』의 공화국연맹과는 전혀 다르고, 심지어 연방공화국과도 결이 다르다. 연방공화국은 생체칩을 활용한 테크국가이지만 오히려 민주적이지도 않고, 인간의 주체성을 방해한다. 오늘날 ‘기술’은 ‘전체주의’와 그리 멀지 않다. 그런 점에서 공화국연맹뿐 아니라, 연방공화국의 독소들도 트럼프 2.0에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도 AI와 전체주의, 권위주의의 결합을 우려한다. 그렇기에 ‘에코토피아’가 그리는 미국의 ‘분열’과 새로운 길은 여전히 참조하기에 유의미할 것이다.
『원더풀랜드』와 같이 미국의 국가 분리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것으로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회의 분열과 대립, 민주주의의 기능성 후퇴,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의 강화, 새로운 미디어와 조직, 기술혁신과 사회변화, 젠더 갈등과 소수자, 난민 문제 등 다양한 이슈들은 이미 공론장에서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으며 이 대립은 복잡한 균열지점들을 양산하고 있다. 예측불확실성의 시대에 보다 넓은 성찰과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