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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 정욱식
  • 14,850원 (10%820)
  • 2023-07-21
  • : 1,502

출처 : 부산노동권익센터 <부산 노동자와 동행하다>

vol 24  2024.12


다모클레스의 칼날 아래 놓인 한반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 정욱식 / 서해문집 / 2023년7월17일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난데없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다. 다행히도 군인들이 국회를 완벽하게 봉쇄하기 전에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이 국회에 몰려갔고, 결국 계엄령을 해제했지만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미스테리하고 반헌법적인 계엄령 선포로 인해 윤석열 대통령은 12월14일 국회에서 탄핵되었다. 명태균이 본인이 구속되면 대통령이 한 달 안에 탄핵되거나 하야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의 말대로 얼추 한 달 되는 날에 탄핵되고 만 것이다. 중앙일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3중 중독(극우 유튜브중독, 알코올중독, 권력중독)을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위험한 사고를 가진 대통령으로부터 국군 통수권을 포함한 국정 운영 권한에 대한 접근을 하루라도 빨리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 와중에 12·3 비상계엄사태의 핵심인물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은 장관관사에 숨어있다가 은근슬쩍 검찰에 출두해 구속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선에서 후퇴한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도, 최병혁 사우디 대사를 국방부장관에 임명하려다 실패했고, 군 출신 국민의힘 국회의원을 다시 국방부장관에 임명하려다 본인의 고사로 실패했다. 제2 계엄령 선포가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12월12일 윤석열 대통령은 네 번째 대국민담화를 통해 일선후퇴 약속을 번복하고 끝까지 ‘항전’할 것을 선포했다. 탄핵 직전까지 군 통수권자의 권능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방부장관은 공석(空席) 상태이다.


사실 79년의 계엄령 이후 45년만의 계엄령에 국민 대다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계엄령을 경험해보지 못한 국민이 다수인 상황이었다. 심지어 계엄군도, 경찰도 계엄령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이렇게 생소한 계엄령이라니. 그러니 북한의 남침 같은 심각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계엄령이 내려질 이유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이 쳐내려 왔는 줄 알았다”는 얘기를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을 보면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한다고 적시했고,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제1호에는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했다. 마치 북한의 남침이 엄습한 것으로 과장한다. 여전히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전쟁이 잠시 중단된 정전 상태의 한반도에는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 두 개의 세력이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군사독재와 극우보수 세력은 언제나 분단을 고리로 야당을, 반대파를, 소수자를, 불온세력으로, 반국가세력으로, 종북세력으로 낙인찍었다. 좁게 보면 남북한, 넓게 보면 남북, 미일, 중러까지 분단을 고착화하고 분단을 관리하며 교묘하게 현상유지의 공모를 해왔다. 그것이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이든, 아들 부시의 “북핵위협론”이든 현상유지를 위한 전술일 뿐이었다.

탄핵정국에 잠깐 잊혀졌지만, 지난 9월 광주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소동이 있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통일하지 말고 대한민국과 북한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주장했다. “당위와 관성으로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고 “통일에 대한 지향과 가치만을 헌법에 남기고 모든 법과 제도, 정책에서 통일을 빼자”고 말했다. 즉각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에서는 평화통일을 추진하는 것에 반하는 반헌법적 주장이며 김정은의 주장에 동조한다면서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평생의 신조였던 ‘통일’을 왜 이처럼 ‘놓아’버린 것일까? 거기엔 북한의 근본적인 전략적 입장변화가 놓여 있다.


소련과 동구권 등 공산권 블록이 건재한 상태에서 냉전의 체제경쟁 시기에는 북한도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또한, 부족한 자원은 사회주의 블록 내 원조와 협력 하에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블록이 몰락한 이후 경제블록도 해체되고 만다. 노태우 정권은 북방외교를 통해 소련, 중국과 연이어 수교를 맺었지만, 북한은 고립되었다. 고립과 해체 속에서 북한(그리고 쿠바)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 이래 지금까지 북한이 추구해 온 바는 단 하나 “북미 적대 관계의 평화 관계로의 전환” 이었다. 이를 통해 세계경제에 편입하고, ‘체제 위기’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다. ‘핵’은 이러한 전환에 있어서 지렛대였다. 벼랑끝 전술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30여 년 간 이어져 온 전략을 북한은 문재인 정부 말기에 내던져 버렸다. 안보는 북미관계 수립을 통해서가 아니라 ‘핵’을 통해서, 경제는 체제보장 후 이어질 개혁개방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북미, 북일관계 개선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해 나가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는 이러한 새로운 북한의 전략적 변화에 대한 고찰이자 그동안 보수와 진보가 공유해오던 북한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업그레이드 패치이다.

2023년부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남한·남조선을 ‘대한민국’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명칭도 버렸고 평양의 남쪽관문에 서 있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도 철거해 버렸다. 북한은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통위)를 폐지하고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삼천리금수강산’, ‘8000만 겨레’와 같은 ‘북과 남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들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 아니라 ‘적’일 뿐이라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이 책에는 잘못된 편견을 지적하는 사실들로 넘쳐난다. 예를 들어 진보적 진영의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가 잘 다져놓은 남북관계를 윤석열 정부가 망쳤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2018년 남북 간 화해 분위기가 최고조일 때부터 이미 문제가 있었고 근본적 변화는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문재인은 종전선언을 정치적 선언일 뿐 주한미군과 유엔사의 지위에 영향이 없다고 했지만, 북한에서 보기엔 종전선언과 유엔사 해체는 연동된 문제였다. 문재인은 ‘완전한 비핵화’ 이후 ‘평화협정’이라는 최종단계를 두었지만, 김정은은 평화협정은 비핵화 이전에 체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가장 많이 경험한 정부이기도 하지만, 1971년 이래 가장 오랫동안 남북 대화가 단절된 정부이기도 하다. 2018년 12월 이후 2022년 5월 임기 만료까지 남북대화는 ‘제로’ 상태였고 2021년에는 1989년 통계가 작성된 이래 처음으로 남북 간 왕래 인원이 0명이었으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사상 최대의 군비증강을 했다. GDP 대비 2.4%였던 국방비는 2.9%로 뛰었고, 2017년 세계 12위로 평가받던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6위로 뛰어올랐다. 윤석열 정부는 ABM(Anything But Moon) 정책으로 문재인 정부의 흔적을 지웠지만, 문재인의 군비증강과 한미연합훈련 재개 등은 충실히 이어받았다.


전 통일부장관 인제대 김연철 교수의 『70년의 대화』(창비)가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국방위원장 간 협상의 마스터플랜이었다면, 정욱식 소장의 이번 책은 말하자면 임종석 전 실장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의 배경에는 날로 다가오고 있는 ‘신냉전’이 있고, 본격화 되고 있는 ‘한미일 남방 3각 동맹’ vs ‘북중러 북방 3각 동맹’의 대결 구도가 있다. 저자는 ‘당분간 다시 친해질 수 없다면 싸우지나 말자’고 주장하며, 통일은 미래 세대에 맡겨 두고 적대성의 완화와 해결을 도모하는 데에 ‘두 국가론’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 책 출간 이후 저자의 생각은 계간지 『황해문화』 2024년 여름호에 실린 「탈북한의 상상력」에서 볼 수 있다. 트럼프2기, 윤석열 탄핵,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의 참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도전은 계속된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과연 평화를 지킬 수 있는가?-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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