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소식지 <연대와소통> 2020년12월(겨울호/통권58호)
책담(冊談)
변화 말고 다른 길은 없다
양솔규 / 편집위원장
《비혼1세대의 탄생》/홍재희/행성B/2020년7월/16,000원
얼마 전 일본인 출신 방송인 사유리의 출산 소식이 전해졌다. 가십거리로 넘길만한 연예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갑론을박으로 시끄러웠다. 바로 비혼(非婚) 출산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전제로 출산해야만 한다고 보는 전통적인 관점이 아직도 지배적인 현실에서 사유리의 결심은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비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0~30대 여성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사유리의 선택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비혼 출산을 선택한 사람은 비단 사유리 뿐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방송인 허수경도 비혼 출산을 한 바 있다. 당시에는 후폭풍이 지금보다 더 거셌다. 허수경은 두 번의 이혼 뒤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아기로 출산했다.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헤쳐 온 허수경의 삶과 선택은 사유리를 비롯한 청년 여성들의 생애 전망을 더 다양하게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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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신년이 되면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동아일보 등 여러 신문을 사서 읽곤 했었다. 2000년 1월1일 각 신문에는(정확히 21세기의 시작은 2000년이 아니라 2001년 1월1일이긴 하지만) 21세기에 대한 전망으로 가득 찼다. 그 중 21세기에 없어질 것 10선에 일부일처 핵가족이 꼽혔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짧은 거 같기도 하지만, 또 긴 시간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영하는 비자 미소지로 추방당해야만 했던 2005년 상해에서, 현실사회주의를 확인하기 위해 갔던 1990년 중국 상해로의 여행을 떠올려 《여행의 기술》에 기록했다. 불과 15년 만에 남루한 인민을 거느린 중국은 첨단 국가자본주의, G2로 거듭났다. 마찬가지로 과연 ‘일부일처 핵가족이 없어질까?’ ‘만일 없어진다면 남는 건 무엇인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던 가족제도는 보시다시피 밑바닥에서부터 변화되고 있다. 부부관계에 기반한 자녀 둘의 핵가족을 ‘정상가족’으로 보는 시각에서 보자면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붕괴’로 보겠지만, 가족의 형태와 구성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보는 시각에서는 이는 불가피한 ‘변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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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1세대의 탄생》의 저자 홍재희는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비록 흥행을 보증하는 인기 상업영화감독은 아니고, 영화 찍는 날보다, 다른 일로 ‘밥벌이의 고단함’을 견디는 일이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책도 3권이나 냈고, 영화로 제법 상도 많이 탔다. 그런 그가 말하는 비혼1세대의 시작은 70년대 이후 태어나 90년대에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다. 일명 X세대(필자 포함)로부터 출발했다. 그렇다고 ‘1세대’를 꼭 연령층의 ‘세대’구분으로 딱 잘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결혼’의 상대적 개념으로 ‘비혼’을 전면에 내세운 것일 뿐, 저자는 ‘결혼’과 ‘비혼’이라는 이분법으로 가족구성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족구성의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제안한다.
저자가 보기에(그리고 모두가 알듯이) 비혼의 근저에는 남성중심 가부장제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이 깔려있다고 본다. 여성들에게 고통스러운 가부장제이긴 하지만, 그나마 이전에는 가장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제가 여성들의 ‘생존’을 보장해 주었다면(이 역시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정확히는 보장해준다고 여겨졌지만), 신자유주의는 그런 가능성 자체를 거세해 버렸다. ‘결혼의 안정성’이 무너지자 성별 분업체계 역시 무너져 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비혼’이 오로지 가임기 여성들의 ‘이기적인 전략적 선택’이라고 보는 관점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는 성차별과 성별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이다. 성별 임금격차, 경력단절에, 독박육아에, 최장 가사노동시간이 여성들 앞에 놓여 있다. 누가 결혼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나마 결혼이라도 하는 사람들의 상황은 숨통이 트여 있어 가능한 것이다.
2019년 통계청 조사를 보면, 1인가구는 614만8000가구로 전체 가구 중 가장 큰 비중인 30.2%를 차지했다. 가구원수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1인가구 비중이 30%를 넘었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다. 13세 이상 인구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1.2%로, 10년 전인 2010년 64.7%에 비해 수치가 13.5%p 하락했다.(통계청) 결혼을 하지 않아도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9.7%로 2012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고,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0.7%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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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1인가구, 비혼으로 사는 것은 행복하기만 할까? 저자는 결혼은 싫지만 혼자도 두렵다고 얘기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필요로 하며, 서로 돌봄을 나누는 존재이다. 당연히 비혼 1인가구라고 해서 ‘고립’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성 1인가구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제적 결핍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적 불평등의 문제와 더불어,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소비욕망의 메커니즘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 ‘돌봄’을 나누는 다양한 가족 형태, 친밀한 공동체를 확장하자고 말한다. 자유의 공동체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사회적으로 더 위험하고, 더 열악하며, 가난하게 사는데도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고독사가 더 적은 점이다. 1인가구 고독사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5%이며, 연령별로는 4,50대가 56.8%에 달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원인을 여성들의 ‘돌봄 능력’에서 찾는다. 이것 역시 가부장제의 결과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들은 살림을 해 나가는 법을 알고, 자신과 남을 돌볼 줄 알며, 상대방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이 없는 남성들은 생활에 무능하고, 공감하지 못하니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일상 불능자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가 비혼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 공동체가 필연적이라면 살림하고 서로 돌보는 능력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가장 큰 피해자는 남성일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나는 사회적으로 독거남성들에게 요리법 등 살림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대대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건강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싼 가격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요리법은 필수다. 건강보험공단은 왜 이런 거에 손을 놓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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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제는 한국에서 혼자 될 가능성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여성들이 모두 결혼으로 골인하는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저출산, 저출산을 정말로 타개하고 싶다면,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평등한 일터가 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그렇게 하더라도 ‘정상가족’의 비율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가족제도에 대해 인정하고, 무엇이 사회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저출산문제가 시급하다면 ‘비혼출산’ 등에 대한 인식 재고와 포용적 제도접근이 필요하다. 스웨덴, 프랑스 등 서구 여러 나라의 저출산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3단계 직전이다. 1,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날마다 나오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일상이 회복되고, 해외여행 가고, 외식하러 가는, 그런 날을 꿈꿀지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97년 IMF 위기,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은 우리에게 ‘다른 길’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졌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는 그 물음에 근본적인 수준에서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비혼1세대가 던지는 물음도 다르지 않다. 가부장제와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억압과 착취의 사슬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청년들이 ‘비혼1세대’로 화답하고 있는 것이다. ‘따로 또 같이 더불어 사는 길’ 이 길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어떤 문제들은 반복함으로써 해답을 얻는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문제들은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또는 다른 것을 해봄으로써 지식을 얻기도 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익숙한 메아리’가 아니라 ‘처음 가보는 오솔길’이다. 이미 후속 세대들은 그 길로 들어섰다.
<함께 보면 좋은 책>
홍재희 / 《그건 혐오예요》 / 행성B / 2017년5월 / 15,000원
김희경 / 《이상한 정상가족》 / 동아시아 / 2017년 / 15,000원
강한별 외 / 《비혼수업》 / 넥서스BOOKS / 2020년 / 15,900원
권미주 / 《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 / 이담북스 / 2020년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