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18년12월, 통권50호
책담(冊談)
공간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방법
《마산·진해·창원》/김대홍/가지/2018년11월/16,000원
양솔규 / 편집위원장
내가 마산에 처음 와 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1989년) 형과 함께 내려왔을 때였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탄지 5시간을 넘겨 달린 끝에 마산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화장실을 갔는데, 너무 낡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곤 밖으로 나왔는데 싸우듯이 소리를 지르는 경상도 사내들의 사투리들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일본말 하는 줄 알았다. 너무 시끄럽기도 하고 답답한 나머지, 터미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밖에서 얼굴도 모르는 우리 형제를 마중 나와 있던 사람은 대림자동차 (김)건곤이형이었다. 형은 우리 형제가 어린 국민학생일 거라 생각해서 종합사탕 두 봉지를 사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고삐리’ 둘이서 내리자마자 담배부터 꼬나물고 있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창원에 처음 가 본 것도 그 즈음이었던 듯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명곡동, 명서동을 지났고, 창원광장과 용지문화공원, 그리고 창원대로를 따라 공단을 둘러보았다. 명곡동, 명서동의 잘 정비되어 있는 인도와 가로수, 인도 옆 파란 풀밭과 그 위에서 삼삼오오 돗자리를 깔고 삼겹살을 불판에 올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들, 빨간 벽돌 2층집들이 도열한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노동계급이 이렇게 잘 사는가?” 라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제 나는 서울에서 보낸 유년시절과 청소년기 기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마산, 창원, 부산에서 보냈다. 대략 마산에서 6~7년, 창원에서 7~8년, 부산에서 9~10년 쯤 보낸 거 같다. 창원은 뜨내기(?)들이 모인 도시이다. 내 가까운 주변만 보더라도, 함안에서, 경북 성주에서, 고성에서, 산청에서, 구미에서, 남해에서, 밀양에서, 창녕에서, 전북 남원에서, 서울에서 창원으로 온 사람들이다. 창원 토박이는 만나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논밭 밖에 없던 곳에 대규모 기계단지가 들어섰으니 이런 상전벽해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수도권에는 창원 같은 도시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인천공항 가는 길에 있는 서울 강서구 ‘마곡’이라는 곳은 대규모 R&D 센터와 아파트가 입주해 있는데, 불과 4년 전인 2014년에는 이곳도 논밭뿐이었다. 아직도 40% 밖에 안 지어졌다니,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모를 일이다. 경기도 고양시 삼송이라는 곳은 어떤가? 신세계 스티필드와 이케아 쇼핑몰, 대규모 세브란스 병원과 아파트 단지까지 없는 게 없다. 도시에도 생로병사가 있는 건 당연할 터이지만, 그 속도는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고향과 거주지가 같지 않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고향에 대한 개념도, 또 자기 지역에 대한 개념도 또 제각각일 것이다. 태어난 곳이 꼭 자기의 고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거주지라고 해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만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산과 창원, 진해에 사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그 터전 위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가족, 동료들과 살아가면서 ‘준거(準據) 지역’으로서의 마창진(또는 통합창원시)을 만들어 나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는 마산, 창원, 진해(또는 통합창원시)와 남이 생각하는 마산, 창원, 진해가 같은 것만은 아니다. 도시는 용광로와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서, 집단적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며, 후속세대에게 전파하고, 또 새로운 집단과 세대가 이를 반복하면서 낡은 것이 소멸하고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도시에서의 경험, 도시에서의 기억은 고정된 것일 수가 없는 것이다.
막 촌에서 올라와 창원 공단에 입사했던 50년대, 60년대생 남성 노동자와, 도시에서 태어나 대학에 다닌 70년대생과, 마창진에서 태어나고 자란 90년대생 청년들의 도시 경험은 결코 같지 않다. 마산에서 고입 입시지옥을 치렀던 평준화, 또는 비평준화 세대들과, 진해에서 해군으로 복무하는 직업군인의 경험도 다를 것이다.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 시골에서 올라와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일하다가 마산에 정착한 중년의 여성과 2000년대 대학을 다니고 지금은 공무원이 된 창원의 여성 노동자의 도시 경험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마산, 창원, 진해에 대해 우리의 기억은 무궁무진하고 아직 이해하지 못할 만큼 다양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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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한 지역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그 지역을 잘 안다거나 잘 이해한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자기 경험에 갇혀 지역의 다양한 면을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삶 속에 묻혀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외지인을 안내하다보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 무지 때문일 때도 있지만,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고 정보가 부족한 마산, 창원, 진해의 소중한 문화와 경관들이 안타까운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해소시켜줄만한 책이 나왔다. 《마산·진해·창원》는 따끈따끈한 책이다. 발간된 지 한 달도 안된 책이다. 게다가 글쓴 이가 아마도 나보다 한 살 위(1972년생)인 거 같고, 마산에서 초중고를 나왔으며(마산중앙고), 진해에서 군생활을 했고, 창원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주로 80년대 마산에서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만이 아는 정서가 깔려 있다. 가야백화점과 성안백화점에 대한 글도 그렇고, 고입시험 커트라인 전국 1위였던 마산에 대한 추억이 그렇다. 물론 저자는 이를 극복하고자 마산, 창원에 살았던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와 60~80년대 신문 기사들도 인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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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미덕은 자세히 알지 못했던 여러 정보들을 집대성한 데 있다. 예를 들어 신라시대 최치원과 마산에 얽힌 여러 사연들이 그렇다. 한때 청주 생산 1번지였던 술의 도시 마산에 대한 글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술의 역사, 청주, 맥주, 소주에 얽힌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강은철의 노래 <삼포로 가는 길>의 삼포가 진해의 삼포마을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80년대 유명 듀엣 베따라기의 멤버 이혜민이 무전여행을 이곳 진해 삼포마을에 왔던 게 인연이 되어 이 노래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재밌다. 나도 학창시절 이 노래를 즐겨 불렀기 때문에 눈길이 갔다. 진해 중화요리집 영해루(현 원해루)에 대만 장제스 총통이 방문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이 책은 이해하기 쉽게 깔끔한 문체로 잘 썼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저자의 꼼꼼한 조사와 취재에 더해 자신의 경험을 녹여 냈기에 더 돋보인다. 또 하나의 미덕은 최신 정보들을 전부 반영했다는 것이다. 2018년 여름 다시 개장한 광암해수욕장 소식이나, 출사 명소로 뜬 옛 도지사 관사 앞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창원(진해)해양공원 소개가 그것이다.
목포나 인천, 부산, 또는 바다 건너 산둥반도 칭다오 등을 가보면 근대 도시역사에 대한 각 도시들의 치열한 발굴 노력들을 볼 수 있고, 또 이러한 노력들이 자기 지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높은 지역애와 지역정체성 형성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점들이 마산, 창원, 진해 각각의 경우에도 타 도시에 비해 뒤떨어져 있고, 더군다나 무리한 행정통합으로 만들어진 통합창원시는 이런 점들이 진척되는 것을 가로막고 더 꼬이게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마산 토박이(토박이라는 말도 상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들이 가진 상실감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아무튼 통합창원시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마산과 창원과 진해는 시내버스를 타고 서로 교류를 해왔던 친숙한 단위공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1987년에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마창노련)을 만들었었던 거 아닌가. 이 책은 그동안 마산, 창원, 진해의 도시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도, 그리고 이를 타 지역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데에도 귀중한 참고점이 될 것이다.
여러 기관들에 책 서평이나 책 소개글을 쓰다보면 “과연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저 책을 사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하는 이 책 《마산·진해·창원》는 꼭 사서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경험한 마산, 창원, 진해와 비교도 하고, 술자리에서 아는 체도 하고, 마창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안내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변에 이 책 소개도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2000년대 비정규직의 눈으로 본 마산진해창원 도시인문학이 나올 수도 있고, 경력단절여성의 눈으로 본 도시인문학이 나올 수도 있다. 도시는 그렇게 풍요로워질 수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과 사이트>
*아래 책들과 블로그 등에서 마산 창원 진해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오만둥이나, 이만기 이전 씨름계의 전설 김성률에 대한 이야기 등이 있다. 아래 책 저자 중 한 사람은 극우적 입장이기는 하나, 마산에 대한 내용은 꼭 그런 관점은 아니어서 소개한다. 경남대 유장근 교수님의 책들은 현재 서점에서 구하기는 힘들다. 《걸어서 만나는 마산이야기》는 사림평생학습센터, 의창평생학습센터, 중앙평생학습센터에서 대출할 수 있다.
《그곳에 마산이 있었다》/남재우, 김영철/글을읽다/2016
《걸어서 만나는 마산이야기》/유장근 외/리아미디어/2011
《마산 창원 역사읽기》/유장근, 박영주 외/불휘/2003
《부산》/유승훈/가지/2017년9월/14,000원
허정도와 함께하는 도시이야기 – http://www.u-story.kr/
역사와 삶의 풍경들(유장근 명예교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yufei21
<오류 & 띄어쓰기>
-115쪽 : 1873년 => 1973년
-125쪽 : 2003년 3월 3.1 민주묘지 => 3.15 민주묘지
-139쪽 : 경복고 => 경북고(?) 경복고는 서울.
-275쪽 : 것투성이 => 것 투성이 (띄어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