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기록에 미친 나라이다.
조선왕조실록도 그렇지만 승정원일기를 보다보면 더욱 그렇다.
조선왕조실록은 승정원일기를 축약 편집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조선왕조실록은 번역(번역이라고 하니 이상합니다만)이 끝났지만 승정원일기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번역작업을 하는 중이라 하는데 몇십년이 걸릴지 알수가 없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이 6400만자의 기록이라면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때 절반이 불타버려 288년 분량만 남아 있음에도 2억 5천만자라고 하니 그 분량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자 할 때 국가의 공식기록 말고도 개인의 기록을 통해서도 많은 부분을 알 수가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선시대 개인일기 학술조사에 따르면 현재 확인된 조선의 개인일기가 무려 1431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 책은 조선사람들이 남긴 개인의 일기를 통해 조선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껴보자는데 의의가 있을 것 같다.
저자의 전작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을 읽고 나니 이 책도 읽어봐야겠다 싶어 구입했는데 전편만큼이나 재미나게 읽었다.
우선 전작과 다르게 책의 초입에 등장인물 소개라는 걸 넣었는데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참고한 개인 일기의 저자이다.
계암일록의 저자인 김령(구운몽으로 유명한 김만중의 그 광산김씨).
매원일기의 저자 김광계(김령의 조카)
노상추일기의 저자 노상추(이분은 전작인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에서 편지도 엄청 많이 쓰신분이다)
쇄미록의 저자인 오희문
묵재일기와 양아록의 저자 이문건(개인적으로 가문의 선조이기도 하고, 형제투금이라는 고사성어와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라는 시조로 유명한 이조년의 후손이기도 하다)
남천일록의 저자 심노숭
서수일기의 저자 박래겸
지암일기의 저자 윤이후
이분들의 일기를 지금의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현대어로 고쳐서 수록하고 저자의 생각을 끼워넣었다.
이 중에서 첫 번째장인 나는 네가 과거시험장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와
두 번째 신입사원들의 관직생활 분투기 네 번째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암행어사라니!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읽었던 부분이라 크게 새롭지 않았는데 나머지 부분은 새롭게 만난 부분이라 재미나게 읽었다.
노비와 관련된 부분이나 집안 경제살림 내용은 전작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과 겹치기도 하지만 그건 전작을 읽은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이 책만 읽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기를 읽다보니 세상사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사는 것은 다 똑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지인을 통해 청탁을 한다던가 시험정보를 얻기 위해 출제위원의 수업노트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는 것은 지금도 늘 보는 일이다.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일은 조선시대에도 즐비했던 것 같다. 허참례라는 걸 통해 신입직원을 골려먹는 걸 국가에서 금지시키지만 관례라고 우기며 하는 것을 보면 요즘 차라리 직장내 괴롭힘 금지라는 법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식을 좋은 혼처에 결혼시키기 위해 애쓰시는 부모님, 혼수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걱정하시고 시댁살이가 힘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시는 부모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계신다.
추노라는 드라마는 실제가 아니었나보다.
선조들의 일기를 보면 노비가 툭하면 도망을 가버려 잡지도 못했다는 내용도 자주 나오고 노비가 주인에게 벌벌 떨었을 것만 같은데 오히려 꾀를 부려 주인을 골탕먹이는 내용도 자주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장님 뒷담화는 술자리에게 가장 맛있는 술안주인가보다.
가장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는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비슷한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