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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체노동자
  • 클레르 갈루아
  • 13,500원 (10%750)
  • 2025-05-15
  • : 385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10년 동안 빅토르를 사랑한 크리스틴. 하지만 동성애자인 빅토르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10년 동안 크리스틴은 스물일곱 명의 애인을 만나면서도 여전히 빅토르를 향한 마음을 지키고, 결국 그의 운구차에 홀로 올라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이 소설은 빅토르의 사망일부터 크리스틴이 운구차를 타는 다음날까지의 하루를 그린다. 독자는 그 하루 동안 크리스틴과 함께 10년의 시간을 되짚게 된다.


이 작품의 프랑스어 원제 <L'Homme de peine>는 직역하면 '고통의 남자'다. 이는 크리스틴이 빅토르를 바라보는 시선을 함축한다. 유명한 이름들의 주변부에 머물고, 근육 경직으로 괴로워하며, '정상'의 경계 밖에 있는 빅토르. 크리스틴은 그를 고통받는 존재로 보았고, 구원의 대상으로서 사랑했다. 나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결국 자신의 결핍이 작동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틴은 '사랑하는 존재'이고 싶었던 것이다. 이 결핍은 애초에 응답받을 수 없는, 불가능성을 내포한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다. 물질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헌신하며 청혼까지 한 아쉴을 통해서는 그 욕망을 충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빅토르 역시 이 점을 간파했다. 그는 크리스틴의 청혼에 "난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서, 오로지 내게 충실하라고 너에게 강요하게 될 거야."라고 답한다(86). 그녀가 자신에게 욕망을 투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너에게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잖아(188)." 유르스나르도 <은총의 일격>에서 게이 남성을 사랑한 여성을 등장시킨 바 있다. 이어 빅토르는 "내 얘기를 써봐."라고 말하다가, 끝내는 "넌 날 몰라.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거야."라고 고함을 지른다(190). 크리스틴의 욕망이 실은 자신을 향해 있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단지 스스로의 욕망을 빅토르라는 대상에게 투사하고 있었을 뿐임을 알았던 것이다.


'사랑에 빠진 자신'을 욕망하는 크리스틴은,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더이상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없다. 때문에 빅토르는 크리스틴의 청혼에 "(...)내가 죽은 다음에 하든지(86)."라고 말하고, 그 말을 실현시킨다. 마지막 길을 함께할 여행자로 크리스틴을 지목하여, 그녀에게 "함께 보내는 최초의 밤(244)"을 선물함으로써. 크리스틴의 '불가능한 사랑'을 완성시킴으로써 그 감정의 구조를 해체하고, 그녀를 해방시킨 것이다. 이 일을 죽음 이후로 미룬 것은, 계속해서 사랑하는 상태이고 싶었던 크리스틴의 욕망을 존중하고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0년 동안이나 짝사랑을 한 건 어쩌면 크리스틴이 아니라, 그녀의 욕망을 가장 잘 이해한 빅토르였는지도. 


그래서 다시, <고통의 남자>를 생각한다. 자신을 향한 듯하지만 실은 굴절된 사랑을 10년간 받는 일 또한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거울처럼 자신을 투사하는 크리스틴을 바라보며 혼란스럽지 않았을까. 성적 지향이 교차하고 욕망이 어긋날 때, 사랑은 어디서 어떻게 피어나고 변형되는가. 그 모든 감정 중, 무엇을 사랑이라 부르고 무엇을 사랑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책장을 덮으며 조용히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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