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알고 지냈고 그 중 6년은 함께 살기까지 했던 친한 언니 고수미에게 돈을 떼인 손열매. 열매는 우울증을 얻고, 목소리가 떨려 직업인 성우 일도 못하게 될 지경에 이른다.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던 중, 고수미의 고향인 완주마을로 찾아가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
예상할 수 있듯, 열매는 완주마을에서 수미를 만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을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서서히 회복한다. 그러니까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 소설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으로 다시 치유받는 이야기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 어저귀의 말대로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을 돕고 싶어 하고, 그런 친교적 조력을 통해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이 언제나 서로에게 친교적 조력만을 행하지는 않는다. 열매는 수미 언니에게 돈을 떼이는 바람에 거리에 나앉게 생겼고, 완주마을에도 돈의 논리 앞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 또한 마찬가지다. 마을 사람들을 결정적으로 갈라 놓고 만 그 해의 장마처럼, "자연은 때론 친교적 선의를 가지고 손을 내밀지만 때론 환경적 조건의 반응 외에는 어떤 기제도 없는, 생명과는 무관한 존재들처럼도(171)" 느껴지기 마련이다. 삶은 그런 것이다. 아니, 어저귀의 표현을 빌자면, '유효'한 상태로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열매는 그 여름, 소나기처럼 많은 변화들을 겪으며 색다른 버전의 여름을 '유효'하게 경험한다. 사람이 사람을 다치게도 한다는 것, 자연도 늘 우리를 품어주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을 온몸으로 겪는다. 그리고는 앓는다. 우리가 이 생을 진정으로 살아낸다는 것은 어쩌면 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아닐까. 그렇게 앓고 나서야 열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 여름을 지나며 익어간다. 겨울의 눈과 봄의 비와 여름의 볕과 가을의 서리를 다 견디고 나서야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계절은 다시 돌아온다. 이 여름이 열매의 마지막 여름일리 없다. 앞으로도 열매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많이 상처입을 것이며, 수없이 많은 장마를 지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내 맘속에 지어 놓은 걸 어떻게 잃어?(212)"하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열매가 이 여름을 지나며 겪은 일들은 가슴 속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 단단한 씨앗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돌아올 여름이 힘겹지 않을 리도 없다. 유효하다는 건 그런 일이다. 우리 모두, 유효한 죄로, 그런 순간들을 계속해서 살아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인생과 자연의 섭리 앞에 무력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때마다 작품 속 디제이의 말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힘을 내야지. "우리는 각자의 몫을 또 완주해야 하니까요.(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