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상아는 조선족 마을 남산촌 출신이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동네에서 같이 자란 무군과 천진으로 떠났던 상아. 세월이 흐른 뒤 동생 금성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상해에 잠시 머무르던 중, 마침 상해에 살고 있다던 천진 시절의 동료 정숙과 연락이 닿았다. 정숙을 만나기로 하면서, 상아는 기억 뒤편에 묻어 놨던 천진 시절을 찬찬히 되짚어 본다.
제목 천진 시절은 물론 중국 천진에 살았던 시절을 의미하지만, '우리가 천진했던 시절'처럼 중의적으로 읽힌다. 천진에서 상아는 부의 격차를 목격한다. 숙소는 쓰레기 수거장 옆에 있었지만 시내에는 "한가운데 우뚝 홀로 선 금황색 빌딩(177)"이 있었고, 상아는 차츰차츰 욕망을 학습해 간다. 간혹 외근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 소위 성공한 사내들의 자가용을 타기라도 하면 "모종의 우월감(152)"을 느꼈고, 점차 "삶의 어떤 변화, 질적으로 더 나은 변화를 원"하게 되었다. (153) 새로운 욕망에 눈 뜬 상아는 결국 변화를 선택하지만, 상아나 정숙 모두 천진 시 한가운데서 황금빛으로 빛나던 금황빌딩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다.
" 어쩌면 그것은 상아 그녀만의 황금성이었다. 성벽도 성문도 성안의 뜰과 크고 작은 건물도, 그 안에 있는 모든 가구와 사람들까지 황금으로 굳어버린 전설 속의 성 말이다. 그 성은 나의 목표이자 소망이었지만 그것은 성 바깥에서 바라볼 때의 목표이고 소망이었다. 그 성안에서 나는 서투른 마법으로 자신의 사랑과 꿈과 삶마저 황금이라는 금속덩어리로 굳혀버렸다. 내가 그곳에서 치른 마법의 대가는 바로 나의 생명 일부분이었다. " (177~178)
결국 이 소설은 부질 없는 욕망을 좇아 본 사람이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는 이야기라고 축약할 수 있지만, 단지 거기까지인 것은 아니다. 소설은 Z시로 돌아오는 상아의 비행을 묘사하며 이 여정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 고향 동네를 지나왔고 천진을 지나왔고 그 뒤의 많은 것들을 지나왔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 (195)
분에 넘치는 욕망을 한 적도 있었고 그리하여 생명의 일부를 희생하며 고향을, 사람을 떠나온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건 "그냥 그렇게 된(175)" 것일 뿐, 후회란 부질 없는 것이다. 삶은 계속된다.
※ 이 책은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