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출판사 사전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정세랑 작가의 첫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에 실린 단편들 중 하나, "이혼 세일"을 받아 읽고 적은 글입니다-
지금까지 읽어 본 정세랑 작품 속 인물들은 참 담백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독자인 내게 자기 속을 완전히 까뒤집어 보여주지는 않는 듯한 느낌. 그래서 작중 인물이 어떤 역경을 겪고 있든 나는 그 감정의 진창에서 한 발 물러서 있을 수 있었고, 설령 그 안에 잠시나마 발을 담그게 되었다 한들 빠져나오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대개는 경쾌한 톤으로 끝났기 때문에 더욱, 읽고 나서도 마음이 짓눌려 힘들다기 보다는 한때 친했지만 이제는 멀어진 오랜 친구를 응원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작중 인물들의 행복을 빌게 되고는 했다.
이혼 세일의 주인공 이재도 비슷하게 담백한 느낌을 준다. 이재는 워낙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친구다. 상처가 됐을 법한 일도 대수롭지 않은 투로 넘기며 오히려 친구를 위로해줄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겐 없는 탁월함을 가진 친구. 별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듯했던 이재가 갑작스럽게 이혼 소식을 전하며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가라지 세일처럼 '이혼 세일'을 연다. 친구들은 각자 이재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이혼 세일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혼 세일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예의 '정세랑 소설'들처럼 가뿐하게 손 탁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엔딩인데, 이번엔 좀 다르다. 주인공 이재는 그다지 전면에 드러나지도 않아 어떤 인물인지 짐작만 하게 되는데도, 어째 이 이재의 결정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담담하게 탁 털고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기까지 이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절망과 용기가 필요했을까. 모든 걸 다 결정한 후 그제야 친구들에게도 밝혔을 정도로 홀로 단단한 사람인 것 같긴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텐데. 이재는 무엇을, 이재는 왜. 예전처럼, 분명 나는 이재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이번엔 어째 읽고 난 후 점점 더 그 결정의 무게를 가늠해보게 된다.
굉장히 짧은 이야기인데, 생각해 볼 지점이 많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눠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