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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퍼온글] 이윤기씨, 이재호교수 ‘오역지적’에 반론
이윤기씨, 이재호교수 ‘오역지적’에 반론 [한겨레 2005-07-03 17:03] [한겨레] 잡초없는 뜰은 없다 이윤기(소설가·번역가)씨가 자신의 저서와 번역서에 대해 이재호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문화의 오역>(동인 펴냄)을 통해 오류를 지적한 것에 대해 답글을 보내왔다. 이씨는 <한겨레21>에 보낸 ‘잡초 없는 뜰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잡초를 뽑아주는 것은 고맙지만 저주에 가까운 비아냥은 도움 되는 바가 적다”고 말했다. 이씨의 글을 요약해 싣는다. 편집자주 나는 원전이 불어·독어·이탈리아어로 쓰인 책은 물론 그리스어·라틴어·체코어·유고슬라비아어로 쓰인 책까지 영어판 텍스트를 통해 번역했다. 나에게는 이들 언어로 된 원전을 번역할 능력이 없었다. 그 시절의 한 풍속도였다. 오독과 오역의 혐의에서 나는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1980·90년대 번역의 오류를 지적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번역서가 상당히 많은 나 같은 사람들을 아연 긴장시킨다.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은 내가 영어판을 중역한 책이다. 초판 출간 14년 뒤인 2000년, 60쪽의 원고 봉투를 받았다. 철학을 전공한 한 학자의, ‘<장미의 이름> 읽기’라는 원고였다. 이 원고는 300여 군데의 부적절한 번역, 빠져 있는 부분과 삭제해야 할 부분을 지적했다. 나는 그 학자의 지적을 검토하고, 260군데를 바르게 손보았다.

번역 및 저술의 오류를 비판한 책이 출간됐는데, 신화 번역이나 저술도 당연히 도마에 오른 모양이다. 저자는 영어영문학회에서 내가 쓴 (번역한 것이 아닌) <그리스로마 신화>를 강하게 비판하던 분이란다. 그분의 지적에 뼈아픈 데가 없지 않았다. 몇 가지 오독과 오역의 지적에는 옷깃을 여미기도 했다. 꼼꼼하게 교열·교정해준 대목에서는 그분에 대한 애증이 교차하기도 했다. 명백한 오류는 수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회에 신화 번역과 서술 방법에 대해서 몇줄 써두고 싶다. 신화 해석에 대한 그분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세 이후 유럽의 예술가들이 그토록 다양하게 변주하던 신화에 대해 ‘창’을 ‘도끼’라고 썼다고 해서, 아테나가 미노스에게 바친 선남선녀가 원래는 14명인데, 12명이라고 했다고 해서 ‘거의 공해수준’이라는 비방을 당해야 옳은가. 신화는 역사가 아닌데도, 포세이돈을 제우스의 아우라고 했다고 해서 모멸의 눈길을 보내도 좋은가. 신화의 계보나 족보는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신화와 관련해서 내가 쓴 책에 신들의 계보는 나오지 않는다. 번역서도 아닌 저서에서, 2천년 전에 유럽에서 쓰인 책과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 문화를 오역한 자가 되는가. ‘다른 설명에 따르면’, ‘다른 전승에 따르면’은 신화 사전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신화 오역·오동지적 고맙지만
다양한 변주와 서술을
저주 가까운 비아냥이라니…
“다른 설명·전승에 따르면”
신화사전에선 즐겨쓰는데… ‘잡초 없는 뜰은 없다’는 말이 있다. 뜰을 가꾸는 자에게 잡초는 숙명이다.

문화의 번역자들에게는 오독과 오역 또한 숙명이다. 내 뜰로 들어와 잡초를 뽑아주는 것은 고맙지만 저주에 가까운 비아냥은 문화 번역 현장을 전쟁터로 만들 뿐, 도움 되는 바가 적다. 나의 작업을 두고, ‘일년에 열한권의 책을 냈다면 거의 한달에 한권씩 썼다는 말인데, 정상적인 번역으로는 아무도 해낼 수 없는 헤라클레스적 작업이다. 바로 이것이 자랑이 아니라 그의 아킬레스 건이다’라고도 쓰고 있다. 나는 소설책도 내고 산문집도 내는 사람인데, 그렇다면 나의 독자들은 ‘비정상적인 번역’만 읽었다는 것인지? 아킬레스는 참전하면 죽게 된다는 신탁을 받고 트로이전쟁에 출전하는 대신 여장을 한 채 뤼코메데스 왕실에 숨어 있었다.

나도 나의 ‘아킬레스건’ 때문에 죽는 것이 두렵다. 그러나 나는 트로이전쟁 출전을 기피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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