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고령화, 연금 고갈, 제조업 쇠락, 극단적 정치 갈등...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야기하다 보면 부정적인 상황을 쏟아내며 이내 절망적인 미래를 그린다. 우리는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정치학자 이관후는 우리나라의 발전과 현재 상황을 정리하며 우리나라가 스스로 소멸하길 선택했다고 말한다. 사람이 많이 모인 수도권은 오히려 출생률이 낮고, 직업적으로 안정적인 세종마저 출생률이 감소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경쟁, 그리고 경쟁. 우리나라가 경쟁 사회인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단순한 경쟁 사회보다 조금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저자는 통계를 이용해 경쟁에서 이긴 10% 조차 경쟁이 지속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한다. 승자 패자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인식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계속해서 과도한 경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수십조원을 투자하고 있는 저출생 대책에 대해 비판한다. 저자는 저출생 자체를 문제를 삼아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말한다. 출산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사는 청년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소멸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누구도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 경쟁해야 할 정당들 사이에서 문제 해결의 비전이나 방식에서 별 차이가 없는 경우, 그리고 정치적 주체들이 권력 투쟁이만 매몰되어 제대로 된 정책 경쟁이나 협력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 말입니다. 78p
2부의 제목 절망을 부추기는 사회, 위기를 방치하는 정치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우리 정치와 사회가 문제 해결이 아닌, 절망을 부추기고 위기를 방치하는 모습을 비판한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법적인 특징을 가해자를 악마화하는데 그치며, 근본적인 문제는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그 예시로 영아 살해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형벌을 강화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을 들고 있다. 게다가 현재의 법무부와 여당은 엄벌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진정한 해결을 추구하는 자세를 갖고 있지 않음을, 특히 여성들의 문제에 대해 귀를 막고 있는 사회를 비판한다. 저자는 설문 자료를 통해 모두가 여성이 일하기를 원하고 육아 때문에 그것이 힘들다는 점도 알고 있지만 많은 부모 세대와 남성은 이 부담을 고스란히 여성이 지길 원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사람들의 인식의 한계이며 개혁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제도적인 노력을 통해 이런 관념을 변화하는 것 또한 중요함을 보여준다.
지방의 위기, 지방 소멸의 위기다. 우리는 지방이 점점 소멸한다는 뉴스를 접하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와닿지 않는다. 2024년 수도권에만 2,600만 명 이상이 거주한다. 그러니까 한국 국민 절반 정도는 지방 소멸에 둔감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저자는 지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방에 좋은 일자리가 없는 것은 기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방 대학의 경쟁력이 약하다면 그것은 그 대학 구성원들이 책임이 아니라 그 대학이 그냥 지방에 있어서겠지요." (96p) 지방에 있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하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대체로 '지역 특성화'를 통해 지역을 활성화시키려고 하는데, 저자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지방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보다 의료나 복지 같은 필수 요소를 충족시키는 것을 더욱 중요시한다. 한편으로는 비난받고 있는 잼버리나 가덕도 신공항 문제 같은 지방 사업에 대해 조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수도권 사람들은 그저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난하지만 개발은 지방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지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방 사람들에겐 지역 산업 하나하나가 희망의 빛으로 여겨질 수 있다. 물론 그만큼 방향이 잘못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지방은 어느새 수도권에 착취되는 모습으로 변했다. 특히 전력은 지방에서 생산하고 대부분의 전력은 수도권에서 소비한다. 폐기물, 소각장 각종 처리장 또한 지방으로 외주화된 현실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년부터 전기차등요금제를 실시할 것인데, 어떤 현실적 효과가 나는지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저자는 현재 정당들이 민주주의의 룰을 어기는 현실을 꼬집는다. 정당 민주주의는 사라졌고, 출생률만 아니라 정치 또한 사라지고 있음을 말한다. 현재는 특정한 정치인을 중심으로 정치 세력이 형성되는 팬덤 정치가 특징임을 말하는데, 사실 이런 팬덤 정치의 모습은 과거부터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계파가 순전히 권력 획득을 위한 패거리 집단이 되었음을 비판한다. 저자는 해결을 모색하며 조금 쉬워 보이는 말로 '언론과 시민들이 계파정치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말로 언론과 시민의 의식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저자는 정부가 법치주의를 오독하고 오용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현 정부의 특징으로 '검사+관료체제'와 '사법 관료 포퓰리즘 기술'을 말한다. 공무원들은 상부에서 시킨 일을 하면 책임을 뒤집어쓰기 일쑤고, 검열을 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그저 하는척하는 수밖에 없고 적극적 행정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민주적 통치의 시대이지만 '반국가 세력'의 단어를 쓰면서 사법 관료 포퓰리즘 기술은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없다.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가 '기후'와 같은 비교적 새로운 의제들을 중요시하고 있는 시기이며 유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검찰로 가득한 우리나라가 잘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한 가지 실마리는 윤석열 정부가 앞선 두 번의 보수 정부와 달리 박정희 신화를 폐기했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보수의 복고적 비전은 박정희였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박정희를 버리고 보수의 상징으로 이승만을 앞세웠습니다. 그것은 사실 이 정부의 여러 정책 기조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194p
나는 저자의 분석에 공감했다. 윤석열 정부는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박정희도 아니라 이승만의 비전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2020년대에. 이미 무덤에 묻힌 반공주의를 꺼내들며 경제적 개발도 아닌, 그저 '자유'만 외치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시장적 자유주의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경제를 포기하면서까지 이념적 갈등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보이는 모습도 이승만이랑 비슷하다. 돌발적인 행동을 하면서 한미 동맹의 가치를 오히려 훼손하고 절대 왕권의 욕심을 부리는 모습 말이다. 정부는 반공적 두려움을 자극하지만 북한이 침략해 우리나라가 망하는 게 빠를까, 우리 스스로가 소멸해 망하는 게 빠를까.
자유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정부에서 보여 주는 '자유'의 가치는 자유주의라고 말하기에도 많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취임식에서 언급한 사회적 자유, 공정으로서의 자유는 온데간데없고, 1950년대 냉전 시기의 반공 자유주의만 남았습니다. 198p
진보의 정치적 모색을 위해 몰락한 정의당과 그 대안으로 뽑힌 조국혁신당의 사례를 돌아본다. 저자는"그러나 그것이 이전과는 달리 처음부터 충분히 정치적이어야 하고, 대중적이어야 하며, 현실의 문제에 대해 당위가 아니라 해답을 제시할 수 이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진보정당을 비판하는데, 어느 정도는 동감한다. 진보적인 정당일수록 의제를 더욱 확실하게 제시하며 더욱 날카롭게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더더욱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정체성 정치를 내세우며 독불장군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정치'에 있습니다. 저는 정치란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직면한 공동체에서 갈등의 표출이 폭력적인 수준으로 격화되는 것을 막고, 최대한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어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좋게좋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방지하고 해결할 비전과 대안을 잘 이끌어 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협력할수록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런 정치가 잘 이루어지려면 좋은 제도가 있어야 하고, 그 제도들을 잘 운영할 줄 아는 정치인과 시민들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지도, 대비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운이 나쁘면 파멸을 막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16p
저는 희망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회가 소멸할 것인가 아니면 버텨 낼 것인가,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는, 그들이 어떤 세계를 창조해 내려고 하는가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의지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소멸을 목전에 둔 지금, 인류의 문명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보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렇게 할 만큼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하고 믿는다면 저는 이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이 공동체에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떤 시도도 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253p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