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음식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쌀국수나 분짜, 짜조, 똠얌꿍, 나시고렝, 팟타이 정도일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음식은 우리나라에 스며들어 한국 현지화되어 있을 만큼 세계로 뻗어갔다. 동남아 연구교수인 현시내가 소개하는 동남아시아의 음식을 들여다보면 해당 지역의 역사가 보이는데, 역동적인 역사만큼 정말로 다양한 음식들이 만들어졌다. 모든 음식들은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기에 음식을 보는 것은 곧 그 나라의 역사, 문화를 보는 것과 같다.
책에서 소개된 가장 흥미로운 음식은 렛펫이라는 발효한 찻잎이다. 렛펫은 법원에서 결정에 따르겠다는 뜻으로 먹거나, 상견례 때 신랑이 신부 집에 가져가 결혼식이 결정되면 나누어 먹거나, 마을 행사에서 먹는 등 미얀마 사회의 상생과 공존을 상징한다. 렛펫은 음료로 마시기도 하고 음식 재료로도 쓰이는 음식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음식이 곧 사회의 중요한 문화적 상징이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동남아시아 음식의 특징은 다양한 인구 구조와 문화가 합쳐져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샐러드 가도가도, 페낭의 생선이 들어간 국수인 아쌈 락사의 경우가 그렇다. 여러 문화를 가로지르며 지역적인 재료를 통해 좋은 특징을 합치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아쌈 락사는 스트리트 푸트 파이터 2라는 프로그램에서 백종원이 아주 맛있게 먹었다) 또 다른 동남아시아 음식의 특징은 새콤달콤한 맛이 많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코코넛 밀크, 고추, 고수와 같은 재료들로 만드는 음식들은 미각적 상상을 자극한다.
음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부대찌개와 홍어처럼. 또 서양의 양배추 수프처럼. 라오스에는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숩 너마이가 있다. 이런 음식들을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 대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은 지역과 역사를 반영하는 문화로 해당 지역의 특산물과 문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채소를 소스에 비비는 것은 우리나라의 겉절이랑 비슷하고. 미얀마의 모힝가는 우리나라의 잔치국수 같은 음식이다. 사이공에서는 노동자를 위해 가격이 저렴한 부서진 쌀인 "떰'으로 밥을 지어 각종 재료와 피시 소스로 간을 해서 먹었다. 알갱이가 작아서 소화가 잘되고 가격이 저렴해서 국민 음식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껌떰"이다.
우리가 나름 잘 알고 있는 태국의 볶음면인 팟타이는 국가가 주도해 유명해진 음식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피분 송크람은 문화 명령을 내려 근대 민족 국가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과정에서 볶음면인 팟타이를 활용했다. 특히 태평양 전쟁 이후 쌀 부족 문제로 인해 면 소비를 장려하며 팟타이는 태국인의 정체성이 되었다. 당대 문학작품에는 국수를 질려 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나올 정도다.
동남아 음식은 인도보다 중국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정치 경제를 포함해 음식문화도 화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인들은 화교 자본의 영향이 커지는 것에 대해 저항하기도 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이런 사회 역사적 배경을 잘 보여준 것이 '인도미'다. 수하르토가 인도미를 생산하는 살림그룹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한때는 gdp의 10%를 차지할 정도의 규모로 성장했다. 지금은 인도미의 라면시장 점유율이 떨어졌지만 지금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처럼 음식은 정치 경제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민족주의적으로 국가 간 정치적 메시지로 이용되기도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비수인 리오 퍼디난드가 싱가포르에서 나시고렝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로컬 음식을 먹는다고 했는데,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나시고렝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반발한다. 이렇게 나시고렝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나시고렝은 볶음밥으로서 동남아시아, 그리고 중국이 어느 정도 공유하는 맛이지만 나시고렝의 인기가 많기 때문에 논쟁이 심화되었다. '음식 민족주의'문제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식 문화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나 다문화주의의 중심에 있다."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싱가포르는 문화전쟁, 특히 음식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저자는 하이난의 음식인 치킨라이스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자신들의 음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을 비판한다. 동남아 전체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음식문화를 한 국가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일까?
동남아시아 음식은 중국 혹은 인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중국과 인도의 아류라고 볼 순 없다. 동남아시아의 방식대로 조리법을 바꿨으며 그 가짓수만 수십 개가 넘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관계는 종교적인 영향이 있었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홀리바질이다. 인도의 힌두교가 태국 불교에 영향을 주면서 바질의 종류 중 하나인 홀리 바질이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로 유입된다. 홀리 바질은 힌두교의 삼대 주신인 비슈누의 아내였던 락슈미 여신을 상징해 신성하게 여겨진다. 태국에서는 이 홀리바질을 이용해 볶음밥인 팟 끄라파오를 만들어 먹는다. 일본 빙수 카키고오이로부터 시작된 필리핀의 할루할로를 보면 각양각색으로 음식을 재해석하고 만들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얀마의 경우엔 영국의 인도 식민 지배 시절 인도를 통해 미얀마를 간접 통치하는 과정에서 인도인들이 미얀마로 들어오게 되는데, 불교적 영향과 더불어 미얀마 볶음밥(터민쬬)에 들어가는 강황이 전파된다. 또 많은 인도인이 넘어가 인도의 쁠라따가 유입되는데 미얀마에선 그 형식이 바뀌어 현지화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맛있는 미얀마 음식의 확산은 군부에 의해 문화적으로 차단된다.
한 나라, 혹은 한 공동체의 음식은 그들이 속한 사회, 경제, 정치, 문화, 환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음식 문화는 해당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 그렇기에 음식과 사람, 그들이 속한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어떤 음식의 기원과 종주국을 가려내는 일보다 중요하다. 미얀마가 군부 독재와 내전으로 무고한 희생을 치르지 않았다면, 경제 위기로 나라 전체가 휘청거리지 않았다면, 미얀마 음식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226p
개인적으로 베트남 쌀국수 가게에서 반쎄오를 먹어본 적이 있다. 크레페 만두에 채소를 곁들여 먹는 느낌이었기에 식사 메뉴인 줄 알았는데, 디저트류에 속하는 것 같다. 반쎄오는 베트남 중부식과 남부식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얇은 크레페 같은 반쎄오는 남부식이라고 말한다. 중부식은 조금 더 두껍고 팬케이크 같다고 한다.
반미 샌드위치는 우리가 이미 잘 먹고 있다. 나는 엔제리너스에서 먹어봤는데 오리지널 불고기가 가장 맛있었다.(광고 아님) 책을 통해 다양한 음식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리뷰를 쓰면서 군침이 돌아서 고생했다. 동남아 음식을 아는 것이 곧 동남아 역사를 아는 것이고, 동남아 역사를 아는 것이 곧 동남아 음식을 아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 않겠는가. 문화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단독으로 소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화의 부분부분이 섞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또 새롭게 즐길 수 있길 바란다. 내일 점심으로 동남아 음식 어떨까. 저는 고수 빼고 주세요!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