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평범한 인간의 기록
  • 킬러 문항 킬러 킬러
  • 이기호 외
  • 15,120원 (10%840)
  • 2024-11-15
  • : 3,605

얼마 전 11월 14일은 수능이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탈출의 종을 쳤다.

(몇몇은 그러지 못했겠지만)

학교는 사회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12년을 갇혀 지내고 가정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지독함은 말로 다 설명할 길이 없다. 일반적인 학생들은 공부하고 수능을 봐서 졸업하는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학교는 사람 사는 곳인 만큼 다양한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더불어 한국은 교육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는 사회다. 학교라는 사회와 교육이라는 열망이 겹쳐 우리 사회는 여러 모습을 만들어내고, 그 면면들이 <킬러 문항 킬러 킬러>에 나타난다. 이 소설집은 14명의 소설가가 한국의 교육이라는 주제로 쓴 글들을 묶은 것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소설이라곤 하지만 대체로 사실에 기반했는데, 부모가 집중력을 위한 약을 구해 아이에게 강요하거나 자퇴를 고민하는 과정, 학교폭력에 노출된 학생의 이야기들이 현실적으로 그려지며 다양한 삶의 모습과 감정들에 집중할 수 있다.

각 소설들은 적은 분량으로 재치를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이 소설에 대해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인지하는 문제들이 드러남과 동시에 많은 이들이 겪었을 현실이고, 지금도 어디선가 존재할 학생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이유 하나로 계속되는 이 현실에 여러 씁쓸한 감정이 교차한다.

자신의 아이가 곧 대화 소재이자 부모의 존재 이유가 되는 현실에서 아이의 교육은 온 가족의 관심사가 된다. 그러나 그 거대한 염려만큼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은 더 큰 불안을 가져오고, 아이에게 더 많은 부담을 가져온다. 아이의 영어수업에서 아이가 동성과 짝꿍을 맺었다는 소식에 교사에게 따져 묻다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말에 당황하는 부모의 이야기는 부모의 욕심으로 인한 교육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길 바라는 모습, 또 부모의 욕심과 어긋나는 현실의 모습을 재치있게 보여준다. 이런 면에선 결국 아이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닌, 부모의 욕심, 욕망을 위한 것이 교육의 현 모습임이 드러난다. 그러한 부모의 욕심은 공부에 대한 부담을 버티지 못해 달아나버린 아이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요즘에도 어린아이의 의대 입시반을 준비한다는 부모들이 있다. 물론 그 부모들의 교육의 권리는 어느 정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가 잘 하는 것, 전체적으로 아이의 행복함을 위한 길보다 부모의 최종병기를 키워 보내는 욕망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다며, 일정 정도 이상으로 아이에게 부담을 주는 교육체계를 그만큼 사회가 녹록지 않다며 강요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둔갑시킨다. 우리는 아이들이 현실을 알지 못한다며 다그치는 걸까 아니면 솔직한 마음을 숨기고 사는 걸까. "너는 나의 가치관, 생각대로 의사나 변호사가 돼서 돈을 많이 벌어서 자랑스러운 나의 상징이 되었으면 좋겠어"라는 마음. 학생이 수능을 위한 일종의 기계, 최종병기가 되어야 함은 명문대생 언니가 성적이 좋지 않은 동생을 다그치며 말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시에 자기 느낌을 가지면 안 된다, 그게 대한민국 국어 교육의 핵심이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줘야 하니?" (59p)

학교폭력을 당해 전학을 갔던 규는 말한다.

"대학을 꼭 가야 해? 대학 가지 않고도 우리,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137p)

물론 '현실적'인 관점에서 볼 때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이 먼저 있는 것일까 사회가 먼저 있는 것일까. 우리가 문제를 인식할 때 근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오직 수능만을 길로 만드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눈이 어두워진다. 이 체계에서 몇 년간을 수능 준비해온(길을 갈고닦고 화려한 기술들을 연마한) 이들을 위한 길을 깔아주고 제대로 된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원하는 게 뭐지도 모른 채 대학에 가게 된다. 작가 염기원은 어떻게 현명하게 문제들을 헤쳐나갈까를 고민하는 사회가 아닌, 서로 끌어내리기를 원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그리고 그렇게 주장하는 아버지를 끝까지 설득할 수 없음을 아는 아이의 마음을 드러낸다.

수능이라는 탈출의 종을 친 아이들이 다시 자신을 찾아갈 수 있는 여정을 떠나길 바란다. 킬러 문항, 이해가 아닌 '탈락시키기 위한' 문항이 존재하는 이 킬러들의 세계엔 연대와 성장이라는 가치가 없다. 우리는 탈출을 희망으로 여기며 과거의 상황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남은 이들에게 그 현실이 대물림 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면, 조금이라도 그 희망을 갖고 있다면 과거의 불만들을 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며, 간직하며 살아야 한다.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