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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의 기록
  • 언니네 미술관
  • 이진민
  • 16,650원 (10%920)
  • 2024-10-28
  • : 6,210

미술작품을 관람할 때 저마다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대상과 소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철학과 미술 이야기로 책을 쓰는 저자 이진민은 미술을 매개로 여성의 이야기, 또 유약해 보이는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를 예술 작품들과 함께 풀어나간다. 단어가 담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특히 세상의 딸들에게, 또 아들들의 마음에 닿길 바라며 예술 작품과 자신의 이야기가 힘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


저자는 자신이 걸어온 삶을 고백하며 '자신을 가둔 감옥'에 대해 말한다. 자신의 유학 경험에서 자유롭게 노는 소녀들을 보며 일종의 부러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강의실에서의 자신이 보이는 모습, 그동안 여성다운 몸으로 살며 체화한 습관들과 자신을 억압했던 문화에 대해 생각한다.

그림은 시대를 나타낸다. 15세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여성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이 작품에서 당대의 여성에 대한 시선이 드러난다. 조각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남성들은 대체로 당당한 포즈로 나타나지만 여성들은 비너스와 같은 동작으로 일관되게 묘사된다. 여성은 특유의 '이쁜' 몸, 자세, 태도를 지녀야 했고 작품에서는 모범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보티첼리의 이 그림에서 내게 가장 묘하게 느껴지는 것은, 신화 속에서 그토록 거침없이 욕망을 드러내는 존재가 이렇듯 수줍은 자세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33p)

저자는 철학자가 강한 체력을 가져야 하고, 철학자들이 실제로도 그랬음을 말하며 여성들에게 당대의 기준에 강요받지 말라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또 생각하는 존재가 되라고 말한다. 저자는 비너스가 가지고 있는 복근에 집중한다. 이 복근을 자연의 힘으로 해석해야 할까 어떤 가능성으로 봐야 할까.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체력이라는 그 희망적 메시지를 봐야 할까. 많은 의문과 철학적인 사유를 던진다.

나는 세상의 딸들이 몸을 쓰고 움직이며, 휘두르고 걷어차며, 내뻗고 달려가며, 삶의 희열을 느끼기 바란다. 한껏 최선을 다해 다양한 동사로 살아보기 바란다.
43p

계속해서 언어와 신화, 문화에 녹아있는 여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강간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로 묘사되는 메두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서사를 뒤집고자 한, 진실을 찾고자 한 현대작가들의 작품도 소개된다. 신화와 상징의 세계에 매력을 느낀 슈투크는 메두사를 팜프파탈적으로 그리는데, 저자는 그의 작품에 매료돼 그 눈 속에 가득한 공포를 느낀다. 이런 시대의 누명을 쓴 여성은 단지 메두사뿐이었을까. 서양 문학에 최초로 등장하는 마녀 키르케를 그린 작가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오랜 여사 속에서 남성의 옆이나 아래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여자들, 순종하지 않고 질문하는 여인들에게는 높은 확률로 괴물이나 마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메두사가 그저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이었듯, 키르케 역시 세상을 궁금해한 똑똑한 여성이었을 뿐이다. 참고로 소설 속에서 오디세우스의 선원들이 돼지로 변한 까닭은, 키르케가 죽어가는 그들을 환대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배를 채우고 나서 그 섬에 키르케가 혼자 산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녀를 겁탈하려고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80p

저자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쉽게 무시하는 특성들에 주의를 기울인다. 먼저 '서투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모두 서투름에서 시작했지만 서투름을 그저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때론 혐오한다. 어린아이의 모습과 일상을 그렸던 야코비데스가 소개되는데, 저자는 "야코비데스 그림 안팎에서 서투름은 편안히 숨 쉴 공간을 찾은 것"이라 말하고 있다. 야코비데스는 그림 안에서 아이가 마음껏 서투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서투름>은 모네와 고흐 또 다양한 화가들이 그렸던 주제인 만큼 인간과 뗄 수 없는 주제다. 저자는 "서투름이 인간을 약하게 만들지만, 서투름이 또다시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길 바라며 "아무리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서투름은 변화의 친구이고 성장의 어머니가 된다."라고 말한다. 서투름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더 나아지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크고 거대하고 화려한 작품들을 쫓지만 저자는 사소함을 담은 작품들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 사소하다는 것은 뭘까. 저자는 시간이 흘러 깨닫는다. "이제는 안다. 익숙함이 매일 포개지며 안정감이 되고, 사소함이 겹겹이 쌓이면 단단함이 된다는 것을" (196p) 저자는 어머니를 잃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슬픔을 회복할 때의 사소함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렇게 사소함과 일상을 사랑한 화가들을 소개한다. 우리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알고 있는 페르메이르도 일상을 그린 화가였다. 저자는 독자들이 사소함 안의 커다란 것을 보길 바란다. 더불어 인간의 한계, 두 눈이라는 감옥에 갇힌 인간의 이야기를 하면서 '뒤'를 보는 것에 대해 말한다. 마그리트와 반가사유상을 이야기하면서 사물의 뒤를 본다는 것, 사건의 뒤를 본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우리의 삶 속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많다. 뒷모습을 보려면 사유해야 한다. 더 나아가야 한다.

대담하게 빛을 향해 가볼 수 있도록 뒤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사소한 것들의 힘들 볼 수 있다면, 그 반짝임에 가닿는 일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사소함이 실은 얼마나 반짝이는 것인지도. 사소한 것들은 단단하고, 하찮은 것들은 편안하다.
200p

마지막으로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를 껴안으며 한 몸이 되는 콩스탕탱 브랑쿠시의 <키스>를 말하며 인간의 삶에서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이란 단순히 좋아하고 몸이 가까워지는 것일까. 우린 사랑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해야 한다. 긍정적 세계로 가득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완벽한 이해, 충만한 합일이 아니다. 그저 곁에 있으려는 노력이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고 다만 사랑할 뿐이다." (310p) 갈라져도, 계속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의 내용은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저자의 이야기도 서술되기에 살이 다소 붙어있고 의식의 흐름적인 서술도 보인다. 후반부로 갈수록 초반의 사고 뒤집기와 같은 내용보다 개인의 일화로 채워져 아쉽긴 하지만 이는 에세이로써, 일상에서의 깨달음을 얻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딸을 가진 부모의 입장으로서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을듯하다. 또 이런 책들을 접하면서 새로운 작품도 알고 저자와 일치하는 생각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 않나. 미술을 매게로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각자 관심 있는 것에서 안식처와 깨달음을 얻기 마련 아닌가.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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