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노동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학자 조돈문이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펴냈다. 그는 각종 통계와 이론을 통해 불평등을 설명하며 세계적 흐름과 한국 사회를 진단한다.
이 책은 필자가 기획한 불평등 시리즈 두 권 가운데 그 첫 번째 책으로서 우리 사회가 왜 불평등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벗어날 여지는 없는지를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26p
책 초반의 이야기는 <21세기 자본>, <자본과 이데올로기>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토마 피케티는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지, 그 구조적 메커니즘을 증명했다. 자산 수익률(r)이 국민소득 증가율(g)보다 증가하면 불평등이 고착화되는데,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20세기를 제외하고 역사적으로 자산수익률(r)이 국민소득 증가율(g)보다 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산 수익률이 국민소득 증가율보다 커져서 노동을 해도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특성에 비롯된 r > g 부등식 경향성으로 인해 '소득 불평등 심화 -> 자산 불평등 심화 -> 소득 불평등 심화'의 악순환으로 소득 불평등은 갈수록 더 악화된다." (50p)
저자는 현재 가장 불평등한 영미형 자유시장경제 모델과 가장 덜 불평등한 스칸디나비아형 사민주의 모델 두 모델을 대표적으로 논의를 이어간다. 스웨덴은 과거 불평등한 상태에서 현재 평등해졌고, 미국은 반대로 과거에는 평등했지만 현재는 불평등한 상황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시장경제 모델의 계급 역학관계를 검토해야 하는데, 핵심은 각국의 노동조합과 조직력 수준, 노동 계급의 정치 세력화 성공 정도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피케티는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계급 역학관계도 물론 중요하지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말했다.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느냐, 평등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방향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저자는 불평등 이데올로기에서 주장하는 주요한 세 가지 기본명제를 나열하고 이에 하나씩 검토에 들어간다. 기본 명제는 다음과 같다.
1) 불평등은 없다
2) 불평등이 있다 하더라도, 불평등은 정당하다
3)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없다 하더라도, 대안적 평등 사회는 실현 불가능하다
데이터에 근거해 1번 명제의 근거는 모두 거부된다. 2번 명제의 근거인 낙수효과와 순기능 근거는 거부되었지만 상승 이동 기회 보장 근거는 거부되지 않았다. 3명제에서는 평등 사회 대안 부재 근거는 수용도 거부도 되지 않았으나 평등 사회 이행 불가 근거는 실질적으로 수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한국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철학적인 '공정'을 논하기 위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인 공리주의적 평등과 롤스의 공정성 원칙으로의 평등을 논의한다. 롤스가 정의론에서 주장한 공정인 자유의 원칙과 기회 균동 보장의 원칙은 굉장히 이상주의적이기에 많은 나라가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에게 이득이 가게 하는 원칙은 자유방임 자본주의와 복지국가 자본주의의 차이점을 드러낸다. 한국은 공리주의적으로도, 롤스의 공정으로도 공정하지 못한 사회다.
위의 분석에서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조금 낮은 수준으로 불평등하고 미래에 대해 비관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평등과 공정의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사회학자 박권일은 저서<한국의 능력주의>에서 한국인은 불평등에는 예민하지 않지만 불공정에는 예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는 ISSP의 조사를 인용해 박권일의 주장에 반대하며 한국인은 '불평등도 못 참고 불공정도 못 참는다'라고 이야기한다.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강한 미국은 이에 반해 불평등에 관대한 편이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데이터로 나타나는 실제 수준처럼 자신들의 처지가 불평등하다고 인식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불평등 체제의 전형적 피해자인 노동자들의 의식 수준이 불평등 체제의 심각성만큼 높지 않은 현상은 계급 이론의 오랜 연구 과제였다." 학자들은 이 현상을 계급 형상 이론, 정의로운 세상론, 체제 정당화론 등으로 설명했다. 실제 불평등 수준을 노동자 계급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다. 우린 여기서 노동자들의 불평등 이데올로기 싸움이 기본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평등은 결국 경제적 분배의 문제이고, 개개인의 철학적 인정의 문제일 것이다. 그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최근 공정 담론과 함께 '실력주의'논란이 부상했는데, 실력주의는 '실력대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인식된다. 실력주의의 실체는 무엇일까. 먼저 저자는 '실력주의'와 '노력주의' 용어를 구분한다. 선천적 지능과 후천적 노력은 구분할 필요가 있어서 광의의 개념은 실력주의로, 협의의 개념으로 능력주의를 말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래 인용구와 같이 '실력주의'는 동서양을 가르지 않고 중요시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능력주의'를 중시하는 것에 더 가깝다. 실력주의 비판은 실력주의 보상 방식이 소득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인이 기여 상응 보상의 형평 원칙을 중시하는 태도는 인류 보편적인 평등 감수성과 공정 감수성을 반영하는데, 서구 자본주의 시민들과 다르지 않다. 한국인도 필요 요인보다 실력 요인을 중시하고 있어 광의의 실력주의가 서구처럼 일정 정도 확산하고 있지만 출신 배경에 밀려 서구에 비해 실력주의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한편, 서구 자본주의 시민들이 노력을 경시하고 협의의 능력을 중시하는 반면 한국인은 협의의 능력 못지않게 노력도 중시하며 상대적으로 자본보다 노동에 더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221p
'인천국제공항 사건'은 한국 내의 실력주의와 공정성, 또 노동에 대한 인식이 모두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비정규직 문제가 최우선 해결 과제로 뽑혔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두 배나 되며 비정규직 오남용을 일삼은 '인천국제공항'이 떠오른 것이었다. 저자는 이 사건이 "피고용자의 절반 이상을 점하는 과도한 비정규직 규모와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 등 노동 조건 격차"로 나타난 문제가 핵심이지만 언론과 정쟁을 통해 애초에 구조적 피해자인 비정규직이 취준생의 자리를 뺏은 것처럼 프레임이 씌워져 "인국공 사태를 개인적 이해관계의 제로섬 게임으로 설정하고 비정규직 오남용 문제를 탈쟁점화함으로써 비정규직 문제의 정책적 해결을 더 요원하게 만들었다"(251p)고 주장한다.
한국의 불평등, 불공정 논의는 재벌을 거쳐갈 수밖에 없다. 재벌은 "총수와 그 가족·혈족이 지배하는 대규모 기업 집단을 의미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부 주도의 수출로 시작해 외환위기와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의 재벌 체제가 형성됐다. 재벌 집단은 정경유착으로 법질서를 유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구조는 유럽은 물론이고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조차 보기 힘든 경우다. 경제 정의적 관점에서도, 사법 정의, 사회도덕의 관점에서도 재벌 구조는 개혁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저자는 삼풍 백화점 판결 사례와 삼성 엑스 파일,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드러난 이재용-박근혜 게이트, 제일모직-삼성물산 인수합병 사건을 언급한다. "법원은 자본의 살육 행위에 매우 관대"했고, 다른 불법적 행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한국 시민들의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70%가 넘어가는 것에 일조했다. 저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상호성'을 말하며 이타주의의 상징이 된 스웨덴 발렌베리가를 한국 재벌과 비교한다. "한국 재벌은 경제적 수탈로 이득을 취할 뿐만 아니라 온갖 불법·비리·악행으로 명백하게 상호성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상호성 원칙을 위반하는 재벌들은 시민들의 마음속에 신뢰와 존경이 아니라 불신과 질시의 정서가 자라나게 한다. 재벌 혐오감은 그렇게 형성되었고, 시민들의 상호적 공정성 원칙이 발현된 것이다."(285p)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들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문재인 대통령을 선출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 유명한 캐치프레이즈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을 내세워 사회·경제 개혁 정책을 제시하면서 힘차게 출발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시민들의 기대와 응원만큼, 초반에 제시했던 만큼의 사회·경제적 개혁을 단행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초반의 높은 지지율과 신뢰에 비판정신을 잊어버리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초반에 문재인 정권에 대한 높은 긍정 평가율이 의미하는 것은 "직무 수행 성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향후 직무 수행에 대한 기대감이 표현된 것으로서 촛불 정부를 자임한 정권에 투사된 촛불 항쟁의 '후광 효과'"(307p)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그 믿음을 져버리고 정권은 교체되었다. "촛불 민중이 공동선을 위해 상당한 위험 부담까지 감수하는 비합리적 선택을 한 것은 국가 권력과 지배 세력이 사회 계약의 상호성 원칙을 위반한 데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303p) 촛불 항쟁은 위에 언급된 부조리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이재용-박근혜 게이트로써 촉발된 것이었다.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저자는 앞서 한국 사회를 비판한 내용들을 짚어보며 대안을 찾는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미국에 의존한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모델에 익숙하고 이를 선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불평등 체제의 정당화 및 불평등 심화로"나타났다. 저자는 스칸디나비아 방식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는다. 우리 사회의 구조와 제도를 다양하게 비교하고 조금 더 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도 조세 부담률이 높아지는 것을 어느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스웨덴을 벤치마킹하되 우리 사회의 객관적 조건을 고려하여 장기적 전망에서 점진적 변화를 추진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지배 체제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 개혁을 추진하되 개혁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노퓨은 수준의 변혁을 지향하는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이다. 비 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은 두 가지 하위 전략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주체 형성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평등 사회를 위한 제도 개혁 전략이다."(325p) 인용한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개혁해야 할 것이 산더미다.
사회 서비스의 상품화가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여 사회적으로 제공하고, 공기업을 사유화하지 않고 공공재를 위한 국가 지자채의 정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며, 기업 지배 구조를 주주 지배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 협력 업체와 지역 공동체 등 이해 당사자가 지배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원청 대기업의 전횡을 막고 원 하청이 이익을 공유하도록 하여 중소기업의 이윤율을 정상화하고, 재벌이 지배 경영권을 독점 세습하지 못하도록 하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정착시키는 한편 공동 결정제와 임노동자 기금제 같은 경제민주주의 장치들도 도입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 중심 주체 형성 전략과 소득 재분배 과제가 잘 진행되어야 이행 주체와 폭넓은 지지 기반이 형성될 수 있어서 시장경제 모델의 제도 개혁도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
329p
굉장히 잘 쓰인 불평등 교양서라고 생각하며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불평등을 통계와 이론으로 논의하는 과정부터, 불평등 논의에 대한 반론까지 피하지 않고 하나씩 검토해서 건너간다. 사회학 서적 기준으로도 잘 쓰인 책이다. 더불어 후반부에 나오는 재벌과 관련한 부정의한 현실은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가 얼마나 뒤틀려있는지, 또한 사법정의가 재벌에게 얼마나 관대한지 잘 나타내주어 단순 불평등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불공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피케티나 롤스와 같은 학자들의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사회학 지식이 조금은 필요할 수 있다. 지배계급 이데올로기가 펼치는 불평등 정당화에 맞서 무엇이 본질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경제 사회구조는 한반도라는 위치와 역사라는 특수한 시공간 아래서 특수한 방식으로 발전했는데, 그 결과 빠른 경제성장이라는 대단한 업적을 달성했지만 그 부작용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굉장히 적은 편이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최대한의 인건비 감축으로 노동의 제값,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불공정을 해소하는 것이 아닌, 기계적 실력주의에 갇혀 '불만 있으면 너도 출세하든가'라는 식으로 지배계급 이대올로기에 지배받는다. 실질적으론 "실력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습 자본주의 성격까지 보여"(333p)주는 현실인데 말이다. 적어도 미국식 경제체제를 지향할 거면, 경제 범죄도 강하게 처벌하라는 주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 경제적 파이는 재벌들의 부조리에 눈감아 주거나 단순히 법인세를 깎으면 해결될 것처럼 재벌들을 응원하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시장과 사회를 합리적으로 되돌려 놓을때 정의의 측면에서도, 경제의 측면에서도 확장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파이를 더 넓혀갈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불평등과 불공정 수준이 높고 시민들의 불만도 강하며, 자본의 일방적 계급 지배 방식에 대한 노동의 저항도 강력하다. 또한 시민들의 상대적 공정성 원칙에 대한 헌신도가 높고 공정성 원칙 위반에 대한 응징 의지도 강하다. 한국의 불평등 체제는 소수의 최대 수혜자들이 불만이 누적된 압도적 다수의 피해자들에 둘러싸여 언제든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촛불항쟁이 우연히 발발한 일회적 사건이 아닌 것도 한국의 불평등 체제가 구조적으로 불안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지배 세력은 불안한 가운데 상생을 거부하고 상당한 사회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네거티브섬 게임을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99% 민중이 1% 엘리트에게 묻는다. "당신들의 잠은 편안합니까?"
345p
한겨레 서포터즈 활동으로, 출판사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