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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의 기록
  • 나, 블루칼라 여자
  • 박정연
  • 16,200원 (10%900)
  • 2024-03-05
  • : 1,778

나는 아직도 여성 버스기사를 만날 때마다 색다른 느낌이 든다. 이것이 어떤 편견일지도, 어떤 응원의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남성이 기본값이 된 직업세계에 여성이 들어선다는 것은 어떤 형식으로든 주목받거나 특별히 대해지는 일이다. 이제는 '여성' 블루칼라 노동자들이라는 주제가 조금 흔해진 것 같지만, 아직도 남성이 주류로 존재하는 다양한 분야, 특히 강한 근력을 요구하는 일에서 여성은 소수로 존재한다. 문화란 생각보다 길게 남지 않는가. 아직도 많은 직업 문화나 체계가 남성 중심으로 남아있고 이 세계에 진입한 여성들은 다양한 일을 겪는다. 


<나, 블루칼라 여자>는 이런 노동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고, 버텨낸 여성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성이기에 힘들었음을 어필한다는 서사가 아니다.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살아간 매우 현실적인 이이기다. 실력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그들이 극복해야 할 것은 단순히 근력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스스로 방법을 찾고, 더 나아가 타인을 위해 직업의 문턱을 낮추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화물 노동자 김지나

플랜트 용접 노동자 김신혜

먹매김 노동자 김혜숙

형틀 목수 신연옥

건설현장 자재정리, 세대청소 노동자 권원영

레미콘 운전 노동자 정정숙

철도차량정비원 하현아

자동차 시트 제조 공장 노동자 황점순

주택 수리 기사 안형선

빌더 목수 이아진


힘을 쓰는 직업이란, 남성들만 존재하는 직업이라 할 정도로 여성이 적은 일이었다. 용접 노동자 김신혜는 여자용접사라는 이유로 임금을 덜 받았다. 그것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작업장에서 남성 노동자에게 젖을 짜달라는 성희롱을 듣기도 했고, 일을 하기 위해서 생리의 부담을 줄이는 미레나 시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적성에 맞았고 그저 재밌어서 일을 한다고, 정년까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목표라 말한다.


화물 노동자 김지나 또한 편견에서 살았다. '운전 못하는 여성'의 편견부터 맞서야 했다. 게다가 일을 하러 온 곳에서, 그를 우습게 보거나 고백도 받았다. 그는 무엇이 성희롱이고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았고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어 화물연대 지부장까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안전운임제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는다.


먹매김 노동자 김혜숙은 성희롱을 당해도 그저 노동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번다는 자부심으로 일했다. 그는 그저 자신만 만족하며 일하지 않았다. 같은 설움을 당하지 않도록 동료 여성노동자에게 기술과 살아남는 법을 잘 알려준다.


형틀 목수 신연옥은 경력단절 여성으로,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일반팀이 아니라 노조 팀에서 일한다. 노조 팀 속에서는 각종 범죄, 특히 성희롱을 예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 자재정리, 세대 청소를 하는 권원영은 여성뿐만 아니라 직업적 편견에 맞서며 살아간다. 그는 2030세대 친구들이 들어와서 일했으면 하는 바람, 또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마음이 있고, 자신의 일뿐 아니라 노동환경 자체를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레미콘 운전 노동자 정정숙은 사회뿐 아니라 집안 편견을 버텨야 했다. 그가 레미콘 운전 일을 한다는 소식이 가정에 들려오자 응원이 아닌 비난만을 들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다. 그의 인터뷰에서는 운전하면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며 긍정적인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그 말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들이 숨어있을까. 그는 유일한 응원자들인 아이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철도차량정비원 하현아는 일을 못하면 여자 꼬리표가 달릴까봐, 여자라는 이유로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더욱 열심히 했다. 일을 뺏기지 않기 위해 남성 노동자들의 도움도 거절하며 틈날 때 근력운동까지 했다. 하지만 장비 규격들이 남성에 맞춰져 있어 불편하다 말한다. 그는 남성 노동자들에게 '형님' 호칭을 부른다. 그게 그녀의 생존방식이었다. '오빠라는 호칭'의 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오빠는 수동적 여성을 연상시킨다. 여성에겐 상사나 동료를 부르는 것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자동차 시트 제조 공장 노동자 황점순은 딸에게 투자를 하지 않고 아들만 밀어주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하며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김해의 한일합섬 방직공장에 입사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그저 일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끼며 일을 했다. 공장엔 기초적인 여자화장실 같은 시설이 부족했지만 버텨냈고, 발전하는 그 역사 속에 있었다.


주택수리기사 안형선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들을 보면서 '여성을 위한 집수리 서비스'를 생각한다. 많은 집 수리기사들이 남성들이었고 의뢰자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람을 모집할 때 어려움을 느꼈다. 여성기술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직접 나섰다. 일을 배우면서도 성적 편견에 대한 말들이 오고 갔다. 누군가 그의 서비스에 살아남아달라고 했던 것처럼 그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다.


빌더 목수 이아진은 집을 짓는다. 목수 일이 좋아 18살부터 현장에서 일을 했지만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 편견들을 없애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일했다. 어린 시절 호주 유학을 다녀왔던 그는 '노가다'라는 편견을 싫어한다. 호주에서는 여성이 목수와 같은 노동을 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고 응원받을 일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블루컬러 노동은 노가다라는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된다. 그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그런 방식으로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 노동은 무시당할 것이 아니라 자부심을 가질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현장일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혹시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부딪쳐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참 자랑스러워요.

먹매김 노동자 김혜숙, 70p


이들은 여성 노동자이지만,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노동에 대한 긍지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모두 공통되게 말하는 것이 성희롱과 같은 성적인 편견과 학대였다. 남성 노동자들은 몰라서 그랬다고 말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그러기도 했다. 하지만 불의에 항의하기 보다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혹은 참아가거나. 그래도 일이 좋거나 생계를 위해 일을 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단단하게 굳어갔다.


어느 여성 노동자들과 같이 중년의 여성들은 경력단절 여성으로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런 그들의 목표는 여성들을 위한 노동이나 서비스 같은 신세대 여성 노동자들과는 다르게 정년까지 일하는 것, 가장으로서 일하는 것과 같이 다른 느낌을 내고 있다.


이들은 진입장벽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직도 성적 편견과 제도를 고쳐야 할 노동 환경이 많다. 물론 남성의 진입 또한 편리한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남성이 기본으로 깔린 노동 사회에서는 여성이 견뎌야 할 몫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 여성들은 어떤 직업이든 의지만 있다면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에겐 이들이 희망이고, 세상일 것이다.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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