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년 전, 2022년 2월 1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군대를 전진 배치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조차 설마 했는데, 러시아는 진심이었다.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며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중국과 대만의 갈등이 깊어지고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나며 세상은 중국과 미국의 신 냉전과 더불어 또 한 번의 긴장 상태와 전쟁에 놓였다.
러시아 출신으로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노자 교수는 <전쟁 이후의 시대>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원인(푸틴의 의도와 세계정세)을 분석한다. 미국 패권의 약화를 바탕으로 중동지역까지 포함한 세계적인 긴장관계 또한 분석하는데, 새로운 전쟁의 시대에서 우리나라(한국)의 대응 방향도 제시한다.박노자는 먼저 푸틴이 지배하고 있는 지금의 '러시아 프로파간다'는 과거의 평등한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외쳤던 모습과는 굉장히 멀어져있음을 비판한다. 현재 푸틴의 행보는 극우의 행보이며, 푸틴은 레닌이 아닌 스탈린의 후계자로, 소련 시절의 연합체가 아닌 오스트리아를 포섭하려는 국가주의적 사고를 보인다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사회주의의 반대편에 "야만"이 있다면, 푸틴주의는 바로 그 야만을 대표하는 이데올로기 중 하나라고 봅니다. 그러한 국가주의, 군사주의, 교권주의, 팽창주의 속에는 계급적 정의나 약자, 환경, 기후에 대한 배려란 추호도 없습니다. 푸틴주의가 지향하는 미래 세계는 강국들이 약소국을 지휘, 통제하는 서열적 세계이지, 평등의 세계는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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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내에는 현재 이를 극복할 만한 대중적인 좌파 세력이 부족함은 물론이고, 지식인과 대중, 중산층마저 국가와 연관돼있는 군수산업체에게서 이익을 얻기 때문에 국가에 저항하는 것은 곧 자신의 밥줄을 끊는 것이라 말한다. 여론 상황도 폐쇄돼있어 친 러시아 성향의 목소리만 노출된다. 그렇게 '제국주의적 사고'가 자체가 러시아 현대 문화에 녹아들어 있다.
푸틴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러시아 제국의 신민"으로 만들려고 하기에 우크라이나인들은 더욱 강렬히 저항하고 있다. 푸틴은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세계가 아닌, 스탈린의 후예로서 하나의 통합된 제국을 원하고 있다. 몇몇 지식인들은 나토의 영향력 확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유도했다고 주장하는데, 박노자는 그 주장을 거부하며 러시아의 침공이 궁극적으로 푸틴 주의 집단이 추진하는 일종의 "국가 주도 개발 전략"이라고 말한다. (139p) 전쟁을 통해서 국가의 경제적 목적을 포함해, 세계 정치 지형을 바꾸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전쟁'은 '돈'과 함께한다. 세계의 많은 열강들은, 특히 미국은 전쟁을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해냈다. 러시아는 군수물자가 곧 국가의 부의 원천이며 우리나라 또한 군수물자로 돈을 버는 나라의 순위권에 올라섰다. 사람을 죽여서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상당한 책임이 생겼다는 것이다. 전선에는 돈 없는 청년들이 나선다. 상대를 그저 적으로만 인식한다. 계급적 사고나 인권을 바탕으로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프로파간다에 선동된 악의 세력을 처벌하러 나가고 있다.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던 그 시대, 그 생각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신자유주의적 격차 사회에서 빈민으로 전락한 옛 소련 공민들과 그 자녀들이 이제 "고액의 보수"를 보고 우크라이나에 가서 같은 소련 유민과 그 자녀들을 죽인다는 사실은 엄청난 역사적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비극이 벌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쟁의 주력 부대가 된 러시아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계급의식이나 계급 조직이 거의 없다는 점이 매우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의 전장에 갔을 때에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을 "같은 계급에 속하는 형제"가 아닌, 러시아 프로파간다의 가르침대로 "서방이 유혹하고 매수한 배신자"로 보는 것입니다.
128-129p
박노자는 이 새로운 전쟁의 시대에서 제국주의 세력들에 대한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비판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열강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떤 환상도 갖지 않고 실리적 외교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견지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애매한 줄타기 외교를 펼친 문재인 정부에서 미국을 추종하며 우크라이나를 전적으로 지원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다. 더 이상 세계정세가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미국 스스로도 문을 걸어 잠그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나름대로의 살길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친우크라이나 행태에 대응해 러시아는 북한과 회담을 가지며 더욱 가까워졌고 북한이 소련에 무기를 수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말한다. 만약 위에서 언급했듯 '전쟁'이 경제를 포함한 세계 문제의 해결책이 된다면, 우크라이나처럼 우리나라도 언제든 열강의 대리전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단순히 다른 나라의 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박노자는 제국주의나 미국, 러시아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자기' 체제 속에서 인권과 민주, 평등의 이상을 실천하려는 투쟁" 또한 절실하다 말한다. 서구 세계와 달리 러시아나 중국 같은 체제에서는 이런 운동 자체가 굉장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지는 않지만, 결국 전체주의적 흐름과 신자유주의적 체제 자체의 모순이 생길 가능성을 제시하고 시민사회를 통한 독재에 저항하는 세력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등이 필요함을 말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자살골'이었다고 말한다. 이제 그 주도 세력이었던 미국(혹은 일본)의 위상은 떨어졌고, 미국과 러시아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전쟁이 흘러가지 않았고, 우리는 새로운 전쟁의 시대를 맞았다. 전쟁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흘러갈지,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박노자의 글과 함께 생각해 보자.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