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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주사위의 서재
가을의 끝자락인 날의 오후 11시 56분.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의 안에서 한 소녀가 혼자서 책을 읽고 있다. 소녀의 이름은 아사이 마리. 똘똘한 19살의 소녀이다. 주의깊게 책을 읽고 있는데 2년전에 언니인 에리와 더블데이트 상대였던 다카하시가 나타나서 아는 척을 한다. 그는 트롬본을 부는듯하다. 그는 트롬본연습 가기전에 마리와 약간 이야기 후 사라진다.

오후 11시 57분 아름다운 마리의 언니, 아사히 에리는 침대에서 자고 있다. 2달째 조용히 자고 있는 그녀의 방에 있는 TV가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

오전 0시 25분 책을 읽고 있는 마리에게 카오루라는 건장한 여자가 나타난다. 다카하시의 이야기를 듣고 왔대며 중국어 통역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그 모텔로 따라간다.

마리는 이일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카하시와 친밀감을 더해가며, 에리는 자신의 방에서 사라졌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게 되돌아 온다.

 

우리말로 '어둠의 저편'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After Dark"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소설이다. 작년 9월인가 11월에 일본에서는 출판 됐고 우리나라에는 6월에 나왔다. 책이 뻔히 나온 것은 아는데 원서를 읽기는 무리인데 방희준씨 같은 사람이 원서 읽는 것을 부러워 하며 소개정도의 이야기나 듣고 있다가 번역본이 나와서 출판된지 한달만에 바로 샀다. 데뷔 25주년 기념이라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하여간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약간의 변화를 줬다가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와 [해변의 카프카]에서 구체화 되었던 스타일, 그중에서도 시점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그리고 역자인 임홍빈씨의 지적대로 도스도예쁘스끼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과 비슷한 성격의 이른바 "총합소설"(하루끼자신이 명명한듯하다)을 쓰기위한 교두보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은 왜 [애프터 다크]일까? 제목의 실마리를 알 수 있는 부분은 다카하시가 트롬본을 불게 된 계기가 된 커티스풀러의 트롬본 연주곡 "파이브 스팟 애프터 다크"(Curtis Fuller - Five Spot After Dark)이다. 그리고 마리도 요즘 여자애 답지않게 그 오래된 곡을 알고 있다. 둘사이의 관계를 가깝게 하는 소소한 계기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트롬본 특유의 푸근한 소리로 악상을 전개하는 재즈곡을 들어서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파악하기는 좀 어려운 것같다.

 

구성의 측면에서 봤을때 하루끼의 여타 소설보다 스케일이 많이 작아졌으며 밤 11시56분에서 시작하여 오전 6시 52분으로 끝나는 시간대별로 나눠놓은 구성이 이채롭다.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하룻밤이라는 짧은 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대신 등장인물간의 대화와 도시가 지니는 밤의 성격을 묘사하는 것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리고 작품의 이러한 성격은 소설의 참여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시점의 측면에서 보면 [스푸트니크의 연인]까지의 그의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개인의 심리를 표현하는 성향이 강했다. 물론 개인의 심리라는 것도 사회문화적인 측면의 영향을 받는 것이며 하루끼의 경우는 6,70년대 전공투 세대의 자기장에 속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거나 참여하려는 소설을 쓰지는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그런 사건에 자기장에 놓여있는 인물들의 자의식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 뿐이다. 탈사회적이면서 자의식강한 쿨한 개인이나 미지의 외부적인 힘에 의해 휘둘리는 개인의 이야기, 내지는 일상의 소소한 깨달음을 주는 개그물(단편의 경우-"패밀리어페어"나 "빵가게 습격" 등..)을 주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대작 [태엽감는 새]에서 사회참여적인 면모가 약간 보이다가 지하철 독가스테러에 대한 르뽀집인 [언더그라운드]를 기점으로 현실참여에 대한 본격적인 모색을 한다.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에서는 그동안의 1인칭 시점이 아닌 3인칭 시점으로의 변화를 꾀하며 내용 역시 참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오이디푸스 컴플랙스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랄까?라는 정도의 내용을 당대 일본의 모습과 함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도 어려졌다. 물론 영감님도 있지만 진정한 주인공인 카프카는 15살.) 그리고 그 다음 작품이 [애프터 다크]이다. 시점의 특징상 1인칭 시점은 사회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한정된 시점이다.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사회의 총체적인 모습을 자세히 표현하고 싶을 때에는 3인칭 시점이 적합하다. 그 전까지 1인칭 시점의 사소설적인 측면의 스타일을 선호했던 하루끼는 지하철 독가스 사건이후로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시점을 비롯한 기법에 대한 모색을 해왔다. 그리고 [애프터 다크]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애프터 다크]는 다소 유치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카메라 워킹의 기법을 빌린(하루끼에게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묘사기법이 좀 유치하고 진부하게 느껴졌다.) 철저한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취하고 있다. 서술자의 도시에 대한 묘사와 등장인물간의 사건 및 대화를 통해 도시의 이면, 즉 밤의 모습을 해설없이 보여주기만 하면서 독자들에게 의미를 찾기를 권하고 있다. 

 

내용적인 측면을 볼때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여타 작가들은 다루지 않았던 도시의 밤의 특성을 살피고 그것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중국인 접대부를 난폭하게 폭행하는 번듯한 회사원, 알 수 없는 존재에 쫓겨서 이름도 감추고 도망치며 살아가는 고오로기, 미디어에 노출된 관음증의 대상이라는 상징으로 등장하는 에리, 여자프로레슬링 스타였다가 세상살이 요령이 없어 빈털털이가 됐다가 러브호텔 경호원을 하는 카오루, 어떻게 샐아야 할지 자신의 삶을 혼란스러워하는 다카하시와 마리 등의 인물들이 겪는 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 내지는 병리현상을 보여준다.

그러면 그 해결책은? 번역본에 실린 권택영선생의 감상노트에 실린 의견대로 그 해결책을 원형적인 측면에서 찾는 듯 하다. 원시시대에 외부의 무서움을 함께 꼭껴안는 것으로 이겨냈듯이 점점 원자화 되어가고 비인간화되어가면서 잠재적인 위험이 많아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마리와 에리를 통해 작가는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고오로기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기억이 삶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면 [애프터 다크] 다음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좀더 스케일이 큰 애프터 다크를 쓸 것이라 생각한다. 시공간적 배경을 좀더 크게 잡으면서 여러 인물들의 다층적인 이야기가 얽히는([애프터 다크]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히는 측면은 약하다) 소설을 발표하리라 예상한다. 시점은 당연히 3인칭을 고수할 것이다. 섣부른 판단이겠지만 지금까지의 작품세계의 변모를 봤을때 나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루끼의 간만의 신작 장편소설 [애프터 다크]는 그의 현실참여적인 성격으로 작품세계가 변화해 가는 과정에 있는 작품이며 그에 따른 기법 상의 변화를 도시의 밤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실험하는 작품이라 정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개인간의 연대나 기억을 힘으로 살아가자는 정도의 주제의식은 여타 만화나 애니메이션, 소설에서 많이 봐온 것이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는 주제이지만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면서 상징적으로 제시를 하는 서술 방식과 같은 변화를 꾀하면서 여전히 하루끼 소설 본연의 읽는 맛을 살리고 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 수록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대는데(놀랍게도 하루끼는 읽을 수록 재밌는 글은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댄다. 어떻게!?) 그건 다시 읽고 생각해 봐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 아쉬운 점은 권택영 선생의 감상노트를 읽어버려서 스스로 의미를 찾기전에 남의 의견을 많이 수렴해 버렸다는 점이다. 역시 글쓰기 전에 그런 감상글이나 분석글은 피해야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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