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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
흔적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람들과 교감하고 때로는 상처를 주며 상처를 입는 상호적인 관계에서 뚜렷하진 않지만 누구나에게 지워지지 않게 남아 있는 일종의 그림자라고 생각해본다. 어둡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 음영 속에는 말로 할 수 없는 형태의 그리움 같은 것들이 묻어 있기 마련이다. 프로이드는 정신에 항상 흔적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직접적인 자각이 불가능함을 말해주는 것이고 즉 우리는 비록 그것이 곧 의식적인 기억의 일부는 아니라해도 후에 곧 의식되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기억-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윤기에 있어서 그리운 흔적이란 어떤 이미지의 흔적이며 기억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소설의 연재당시 원제목이 '그리운 터부'였듯 금기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금기란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때론 너무도 가혹하게 잔인할 수 있다. 금기는 그러나 때론 너무도 달콤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매우 매혹적이고 향긋하며 우리 정신을 혼미하게 하기도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에게 있어도 신애누나는 그런 존재로 다가왔으리라. 금기를 범하게되면 가시밭길을 걷게되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반면, 범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물러서서 다른 길을 걸어갔을 때, 우리는 늘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게 마련인 것이다. 작중인물 또한 그런 우유부단함과 사람들의 비난을 의식하여 그만 보편적이고 넓고 밝은 길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그 길을 걸음으로 해서 다른 두 여인의 삶과 그의 삶 전부는 크게 상처 입는 결과를 낫는다 이러한 삼각형의 구도는 결국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얼핏 보면 진부한 줄거리이면서도 이 작품이 매력을 발산하는 이유는 긴장된 인연의 끈을 존재론 적으로 풀어낸 작가의 인식 때문이다. 그리움의 형태로 남은 위반의 욕망과 그것의 새삼스런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곧 우리가 끌고 다니는 긴 그림자와 같은 진실과 해후하는 힘겨운 과정이다. 도저히 속단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인생의 무게를 작가는 기막힌 비유와 문체를 통해 그려낸다. 이 이야기는 삼각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화살 맞아 죽게되는 노루는 이 작품에서 삶의 본능을 감추지 못한 채 상처 입는 한 여성의 불행한 삶을 얘기한다. 그것은 융이 말한 그림자의 세계를 의미한다. 사냥꾼은 우리의 현실 다시 말해 강한 페르소나에 해당하며 이 작품에서 패르소나는 현실적인 사랑을 꿈꾸는 한 여성의 모습 '유지'를 통해 그려지고 있다.

노루를 숨겨주었다가 결국에는 그 노루의 희생을 방조하는 처녀는 세속적인 사랑과 현실에 순응해버린 그림자를 벗어버리고 페르소나를 쫓아가는 남자 주인공으로 그려져 있다. 융의 심리학에서 다뤄지는 그림자의 태고유형은 인간의 인격에 충실하고 3차원적인 특성을 준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력, 창조력, 활력, 가능성을 본능을 통해 일깨워 주기도 한다. 그림자를 지나치게 거부할 경우 우리는 무미건조한 인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림자는 이처럼 양면성으로 나타난다. 원시적 생명력으로서의 그림자는 예술이라든지 삶의 열정을 가져오지만 반면에 파괴적인 속성으로서의 그림자는 악마적이고 살생적이며 사나운 형태로 현현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림자와 반대되는 개념인 페르소나 인간의 현실적인 측면에 있어서의 가면에 해당하는 것으로 페르소나는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가면 또는 외관이며 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한다. 또한 자연스럽고 개인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너무 한쪽에 치우치다 보면 불행을 초래하게된다. '묘적(신애누나의 법명)'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유지'의 탈속(脫俗)은 찌릿찌릿한 반전과 함께 '아니라고 못한 죄'의 대가가 얼마나 끈질긴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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